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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락지사

안승락(安承樂)원문이미지이명이주호,배갑술(李周鎬,裵甲述)생년월일1909년 04월 01일1913년 04월 01일적용죄명치안유지법본적지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 퇴촌리주소경기도 경성부 종로출생지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 퇴촌리 撮影保存原板11.6 ミ昭和10年 11月 6日 西大門刑務所ニ於テ撮影(小) 第29692番 氏名異名指紋番號年齡手口番號身分職業身長特徵番號本籍生地住居最近刑罪名刑名刑期言渡官署言渡年月日入所年月日出所年月日刑務所名檢擧官署其他前科檢擧常用手口槪要安承樂李周鎬,裵甲述2695799769大正2年 4月 1日 中央醫院營5尺5寸 慶尙南道 昌原郡 上南 退村 829慶尙南道 昌原郡 上南 退村 829京畿道 京城府 鍾路 3丁目 7治安維持法違反 카드번호 : ia_2948 카드등록번호 : SJ0000005236

카테고리 없음 2025.05.07

안창대 지사

안창대(安昌大)원문이미지이명강영근(姜永根)생년월일1910년 12월 01일적용죄명치안유지법본적지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 퇴촌리주소경기도 경성부 화원출생지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 퇴촌리 撮影保存原板11.6 ミ昭和11年 1月 6日 西大門刑務所ニ於テ撮影(小) 第29675番 氏名異名指紋番號年齡手口番號身分職業身長特徵番號本籍生地住居最近刑罪名刑名刑期言渡官署言渡年月日入所年月日出所年月日刑務所名檢擧官署其他前科檢擧常用手口槪要安昌大 2977786886明治43年 12月 1日 ナシ5尺5寸0分 慶尙南道 昌原郡 上南 退村 829慶尙南道 昌原郡 上南 退村 829京畿道 京城府 花園 79治安維持法違反

카테고리 없음 2025.05.07

안념의 괴헌정

사림동 79-6번지에 가보면 이 땅에 600년의 생명을 이어온 신목의 뿌리와 엉켜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선사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이 여러 조각으로 깨어졌으나 그 위용만은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다. 이 고인돌에 [퇴촌 괴헌정]이란 글귀와 광무9년 을사년(1905년) 3월에 새겼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불과 7개월 후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져 민족의 비극인 조선이 망하는 안타까운 해이기도 하다. 창원의집 출신인 안희상(51세)씨에 의하면 “창원의집 뒤편 야산에 있던 것을 공단을 조성하면서 이곳에 옮겨 둔 것이라고”전한다. [槐軒亭]이란 말 그대로 회화나무가 정자의 처마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이다. 회화나무는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으로 이 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정신이 맑아지는 기운이 흘러 가..

카테고리 없음 2025.05.05

진주도통사

2022.9.22. 진주시 도통사 전경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724(내축로577번길 29-9)에는 우리나라에서 안자安子라 칭하는 회헌晦軒 안향安珦(1243~1306)을 공자孔子·주자朱子와 함께 모시는 도통사道統祠가 있다. 이곳의 해발 높이는 65m, 좌표는 35°07'58"N 128°00'56"E를 가리킨다. 도통사道統祠는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고, 처음에는 대평면 하촌리 547-2번지에 있었는데 남강댐 공사로 인하여 1995년 이곳으로 옮겼다. 공자(孔子)를 주벽(主壁)으로 주자(朱子)를 배향하고 안자(安子)를 종향(從享)하여 영정을 봉안하고, 매년 공자탄신일인 8월 27일에 제향한다. 2022.9.22. 진주시 도통사 전경 측면 안향安珦은 1290년 왕과 왕비를 호종하고 원나라에 가..

카테고리 없음 2023.05.12

이 만성 公諱晩成 字大器

餘窩先生文集卷之二十一 / 行狀[一] 李中樞行狀 b090_394c 편목색인 [DCI]ITKC_MO_1087A_0210_010_0020_2012_B090_XML DCI복사 URL복사 勝國公卿門閥之盛。無出仁川李氏之右。鼻祖邵城伯諱謙。本首露王金氏之裔。首露王十男。二從母姓爲許氏。謙其後也。仕新羅奉使朝唐。唐肅宗見而嘉之。錫國姓李氏以寵之。歸而著籍邵城。邵城今之仁川也。自是左僕射文景公翰,右僕射子祥,太尉平章 事預,侍中致仕文忠公公壽,司空文正公之氐,翰林學士世興。奕葉烜爀。名載史官。七傳而至參贊大提學恭度公諱文和。由前朝魁科。入我朝名蹟著稱。又五傳有諱邱,諱元佑,諱珙官參奉。是公考祖考曾祖三世也。公諱晩成字大器。英偉沉重。慷慨有大節。事父母孝。與朋友信。膂力又絶人。郡北有大澤。澤有蛟逞惡。乘霧雨出噉人畜。畜牧者不敢近澤傍。一郡人患之。公赤手探其窟。捕蛟而出。蛟慴不敢動..

카테고리 없음 2022.08.20

안중근 의사 어록

안중근 의사 어록 안중근 의사가 의병을 이끌 때 읊던 시 男兒有志出洋外(남아유지출양외) 사나이 뜻을 품고 나라 밖에 나왔다가 事不入謀難處身(사불입모난처신) 큰일 못 이루고 몸 두기 어려워라. 望須同胞誓流血(망수동포서류혈) 바라건대 동포들아 죽기를 맹세하고 莫作世間無義神(막작세간무의신) 세상에 의리 없는 귀신은 되지 말지어다. 안중근 의사 유묵 보물지정 569-1 백인당중 유태화(百忍堂中 有泰和) (백번 참는 집안에 태평과 화목이 있다.) 569-2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 569-3 년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 해마다 계절 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같지 않네.) 569-4 치악..

카테고리 없음 2022.08.18

■ 안황 이만성 안신갑 정유재란

○ 안 황(安 璜) 1552~1623년, 관동별곡(關東別曲)을 지 은 고려의 대유학자 문정공 안축(文貞公 安 軸)의 9세손이며 이조개국공신 흥령부원군 (興寧府院君) 안경공(安景恭)의 7세손으로 서 기묘사화(1519년) 때 화를 피하여 함안( 咸安)으로 내려온 취우정(聚友亭) 안관(安 灌)의 손자이다. 약관에 임금이 친히 치르는 무과정시(武 195 第6章 外侵과 倭亂 科庭試)에 급제하였으며 임금이 공의 용모 가 건장하고 기상이 뛰어나 특별히 선전관 (宣傳官)에 임명하였으나 부모님이 연로함 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봉양하기를 애걸하 여 양해를 얻어 고향으로 내려와 매일밤 옷 도 벗지 않고 아버님 곁에서 병환을 시중들 었던 효자였다. 임진왜란 일어나자 안신갑(安信甲)·이 숙(李潚)과 더불어 김해로 달려가 많은 적..

카테고리 없음 2022.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