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 4

순흥안씨 직장공파 직계행적

세(世) 이 름 족 보 등 재 내 용 1 세(世) 안자미 安子美(안자미) 다른 족보(族譜)에서는 公을 이르기를 석(石)이라 한다(他譜稱公石) 고려(高麗) 신종조(神宗朝)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의 벼슬을 지내고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追封)되다 配  氏실전(失傳) 墓순흥(順興) 소백산(小白山)아래라 하나 아무 표시가 없어 찾을수가 없다(無表未尋) 후손(後孫)인 순원군(順原君) 응창(應昌)이 의성(義城)고을의 원(元)으로 있을때 단소(壇所)를 쌓고 순흥(順興) 평리촌(坪里村)에 유지비(遺址碑)를 세우고 제사(祭祀)지낼 위토(位土)를 마련하니 매해 10월1일에 제사를 받들고 응창(應昌)이 지은 단소기문(壇所記文)이 총록(總錄)에 들어있다(後孫順原君應昌宰義城築祀壇於順興坪里村遺址置祭田每十月..

카테고리 없음 2025.06.16

퇴산서당기(退山書堂記)

퇴산서당기(退山書堂記)정병산은 창원 남쪽 경계에 있다. 웅장하고 빼어나 우뚝 솟은 모양이 갑옷과 투구를 갖춘 병사가 전쟁에 임하여 굽히지 않는 굳센 기상이 있는 것 같으므로 산이 이 이름을 얻은 것이다. 산 전체 줄기 중에서 한 가지가 꿈틀이며 내려와 불쑥 솟았다가 문득 가라앉아 깊고도 아늑한 곳에 골짜기가 열렸으니 이곳이 퇴촌으로 안씨의 세거이다.마을 앞에는 개울이 있고 그 옆에 우뚝 높이 솟아 산뜻한 것은 퇴산서당(退山書堂)이다. 안씨들이 그 선조인 모헌(茅軒) 장암(壯庵) 두 선생을 위하여 지어 그 마을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안씨는 동방의 학문을 처음 연 회헌(晦軒) 선생의 후손으로 순흥을 본관으로 한다.중세에 교위(校尉)인 창공(昌恭)이 처음 함안 모곡에 거주한 뒤 4대를 전하여 부호군(副護..

카테고리 없음 2025.06.14

司憲監察茅軒安公諱慜묘갈

壬辰殉節司憲監察茅軒安公諱慜。有子曰信甲。生於嘉靖甲子。剛勇素著。薦授宣傳官。轉至草溪郡守。島夷之亂。聞監察公死節於金海立石江。奔往甘露寺問儈徒。直向江上。有立木書曰朝鮮忠臣安某死此。又有角牌懸其上。以布帒掩其屍埋其側。公痛憤其賊手所爲。解其帒而收牌。負屍以歸。葬于入谷先壠。乃誓復父讐。出家僮募義士。每推鋒先登。擒賊則碎腦以飮。丁酉倭再入冦。公謂黃石 山城嶺湖要衝。爲固守應變之計。前向山陰。部分未定。値倭大至。力盡矢竆。公知事無可爲。謂其屬曰雪恥報讐。是吾日夜腐心者。而志願未伸。天也奈何。寧自决之爲快。遂被甲杖釰。自投於換鵞亭之深潭。事聞命旌表其門。贈掌隷院判决事。仍下敎曰復父之讐。雪國之恥。求忠臣必於孝子之門。咸州誌曰公膽大于身。遮截東南。一方賴之。山西錄云當時驍將二人。一則安信甲。一則鄭起龍。嗚呼壯哉。壯菴之號。可見平日自詡之義乎。噫。臨難奮義。見危授命者。世未嘗無人。而至若忠孝雙..

카테고리 없음 2025.06.14

창원 합성동 순흥안씨 영모재 永慕齋

창원 합성동 순흥안씨 영모재 永慕齋 2015.8.24. 창원 제2금강산 입구 삼천동 각자 앞 풍경 옛 합포성이 치소(治所)였을 때 창원향교가 위치한 곳이 바로 제2금강산 입구에 있는 순흥안씨 영모재 앞 삼청동(三川洞) 각자가 위치한 일대였다고 해서 찾아보았다. 회원구 합성동 840번지는 영모재가 위치하고 그 앞 숲에는 문성공회헌안자합포유적비(文成公晦軒安子合浦遺蹟碑)와 문순공죽실안선생합포유적비(文順公竹室安先生合浦遺蹟碑)가 나란히 서있다. 영모재는 출입문이 잠겨있어 내부는 구경을 못하고 먼 발치에서 사진 한 장만 남기고 돌아 왔다. 그러나 영모재기와 문성공 안유의 비문에서 우리 지역의 역사를 돌이켜 볼만한 내용이 있어 기록으로 남겨 본다. 문성공회헌안자합포유적비와 문순공죽실안선생합포유적비 文成公晦軒安..

카테고리 없음 202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