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위공(校尉公 : 諱 昌恭 : 11세)파/직장공파 직장공(直長公)의 장자(長子)로 충순위 병절교위(忠順衛秉節校尉 종6품)를 지냈다. 직장공의 세 아들이 기묘사화와 신사무옥을 거치는 동안 직접적인 화를 당한 기록은 없지만, 당시 정황으로 보아 서울에 거주하던 이들은 기묘명현들과 교유관계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종질인 안당(瑭정민공)과 그 아들들의 죽음은 이들이 한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교위공(창공)은 동생 감찰공(창렴)과 함께 가솔(家率)을 이끌고 처향(妻鄕)인 경상도 함주군 산익면 모곡리(慶尙道咸州郡山翼面茅谷里 지금의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포덕산(飽德山) 밑으로 이주하였다.교위공의 탄생년도는 알 수 없고, 졸년은 중종 갑오(1534년)이다. 묘는 입곡리 안현간좌(鞍峴艮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