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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慜

함안에서 김해부 시례로 이주한 인물이었는데, 선조(宣祖) 때 무과에 급제하여 부호군(副護軍) 사복시정(司僕寺正)으로서 임진년에 휴가를 얻어 김해에 있으면서 감로사에 있는 안향(安珦)의 시판을 다시 판각하러 갔다가 일본군이 쳐들어 온 소식을 들었다. “나라가 어지러워 흔들리는데도 도망하여 달아남은 임금의 밥을 먹는 자가 감히 할 수 없는 바다. 하물며 우리 집은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입고 관록의 몸에 있음에랴” 하고, 4월 23일 승려 100여 명과 바로 읍성으로 달려가다 길에서 일본군을 만나 싸우다 죽었다. 아들 안신갑(安信甲)이 이야기를 듣고 달려가자, 조선의 충신 안민이 여기서 죽었다고 쓰인 팻말을 일본군이 걸어 놓았으므로 뒤에 고향에 반장(返葬)하였다. 안민순절유적비(安愍殉節遺蹟碑)가 불암동에 있다..

카테고리 없음 2026.10.12

순흥안씨 직장공파

1) 교위공(校尉公 : 諱 昌恭 : 11세)파/직장공파 직장공(直長公)의 장자(長子)로 충순위 병절교위(忠順衛秉節校尉 종6품)를 지냈다. 직장공의 세 아들이 기묘사화와 신사무옥을 거치는 동안 직접적인 화를 당한 기록은 없지만, 당시 정황으로 보아 서울에 거주하던 이들은 기묘명현들과 교유관계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종질인 안당(瑭정민공)과 그 아들들의 죽음은 이들이 한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교위공(창공)은 동생 감찰공(창렴)과 함께 가솔(家率)을 이끌고 처향(妻鄕)인 경상도 함주군 산익면 모곡리(慶尙道咸州郡山翼面茅谷里 지금의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포덕산(飽德山) 밑으로 이주하였다.교위공의 탄생년도는 알 수 없고, 졸년은 중종 갑오(1534년)이다. 묘는 입곡리 안현간좌(鞍峴艮坐)..

카테고리 없음 2026.10.06

통문 칠원향교 安貞錫

독음해석 네. 이 문서는 사진 판독과 원문 자료를 대조해 보니 1902년(壬寅) 9월 18일 창원향교가 칠원향교에 보낸 「通文」으로 확인됩니다. 특히 문창공 최치원(해운 선생)의 두곡영당 중건을 위해 칠원향교에 인력 지원을 요청한 문서입니다. 1. 문서 제목通文독음: 통문사진의 수신처는右文通于漆原鄕校우문통우 칠원향교→ “이 통문을 칠원향교에 보냅니다.”작성처:壬寅九月十八日 昌原鄕校임인 구월 십팔일 창원향교→ 1902년 9월 18일 창원향교2. 원문·독음①右文爲奉告事伏以文昌公海雲崔先生道德文章陞配聖廡則不待鄙等之言而一千年海東章甫孰不崇奉而矜式哉독음우문위봉고사복이 문창공 해운 최선생도덕문장 승배 성무즉 부대 비등지언이 일천년 해동 장보숙불 숭봉이 긍식재뜻삼가 글을 올려 고하는 일입니다.엎드려 생각하건대, 문창공(..

카테고리 없음 2026.09.30

退隱處士 順興安公 逍遙之地

退隱處士 順興安公 逍遙之地[안내문] 퇴은처사 순흥안공 소요지 (退隱處士 順興安公 逍遙之地)■ 위치: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국립창원대학교 도서관 앞 정원1. 표석의 유래와 의미‘소요지(逍遙之地)’란 거닐며 사색하고 학문을 탐구하던 유서 깊은 공간을 뜻합니다. 이 표석은 조선 후기 창원 지역의 대표적인 선비이자 목민 구휼과 교육에 헌신한 퇴은(退隱) 안두철(安斗喆, 1809~1876) 선생이 사림동(옛 퇴촌동) 일대의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 거닐며 학문을 다스리던 뜻깊은 유적임을 알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2. 퇴은(退隱) 안두철(安斗喆) 선생의 생애와 업적가계와 학문: 본관은 순흥(順興)으로, 고려 말 회헌(晦軒) 안향(安珦) 선생의 후손입니다. 봉림동·사림동(옛 퇴촌동) 일대에서 태어나 평생 유..

카테고리 없음 2026.09.25

白明 伏惟 안두철

이 편지를 쓴 퇴은(退隱) 안두철(安斗喆, 1809~1876) 선생은 창원 퇴촌리에 세거하던 순흥안씨(順興安氏) 문중의 핵심 인물이자, 오늘날 창원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창원의 집'(당호: 성퇴헌)을 건립하고 지역 빈민 구휼(보사계 운영)에 앞장섰던 유력 학자입니다. [1, 2].1. 📝 최종 확정 독음 (우측에서 좌측 순)1행: 治下 喆 拜上 (치하 철 배상)2행: 向時 傳 侍 眷同 (향시 전 시 권동)3행: 右復 達 主 佳 慰 (우복 달 주 가 위)4행: 祗承 區區 卽 臥起 (지승 구구 즉 와기)5행: 不任 一期 勢 勿 (불임 일기 세 물)6행: 左右 亦 差 願 卽今 (좌우 역 차 원 즉금)7행: 方 少 補 道 用 (방 소 보 도 용)8행: 音 順 故 玆 納 于 (음 순 고 자 납 우)9행: 直亏..

카테고리 없음 2026.09.10

근배상 안두형

1. 원문 독음편지는 오른쪽 행부터 왼쪽 행으로 순서대로 읽습니다. 행 사이에 작게 가필(행간 첨백)된 글자들도 문맥에 맞춰 온전히 포함시켰습니다.謹拜上 (근배상)拜違已日矣. (배위이일의.)侍餘鶴體候, 伏未審, 連護萬重? 否? (시여학체후, 복미심, 연호만중? 부?)兩地不是涯角, 相滿야, 而承誨每恨多輦. (양지부시애각, 상만야, 이승회매한다련.)[행간 가필]: 俗韁之雜, 脫良苦耳. (속강지잡, 탈양고이.)今從咸兄科事, 認是積蔭之厚, 有此大發. (금종함형과사, 인시적음지후, 유차대발.)[행간 가필]: 斗馨 忝在同慶之列, 其榮到日, 進其之煥爛祥光, 奚啻曾所願情? (두형 첨재동경지열, 기영도일, 진기지환란상광, 해시증소원정?)前頭階進, 復可量耶? (전두계진, 부가량야?)諒亦當如此. 慈省지恙(遠)眼宿祟, 參時忽..

카테고리 없음 2026.09.10

惠恤碑閣記 퇴은 안두철 신기선(申箕善)지음

2013.8.5 창원의집 앞 안두철보사불망비 현재 ‘창원의집’ 앞 우측에는 지금의 창원의집을 있게 한 안두철(安斗喆)의 시혜비가 있다. 상남면민(上南面民)이 세운 작은 비에는 학생순흥안공두철보사불망비(學生順興安公斗喆補社不忘碑)라 새겼고 그 비의 우측에는 후손들이 1981년 6월에 새롭게 제작하여 세운 비가 있는데 퇴은안공두철보사불망비(退隱安公斗喆補社不忘碑)라는 제목을 달았다. 창원면민이 세운 작은 비석의 높이는 108cm, 너비 44cm, 두께 13cm이다. 비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안공(安公)이 사창을 운영하여 그 돈으로 학교를 지어 면민들의 자식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이 때 학교를 짓는 일에 면민들을 동원하거나 부역이나 세금을 내지 않게 했으니 그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으로 이 비가 세워지게..

카테고리 없음 2026.08.31

昌原鄕校。呈巡相權公。 / 무릉잡고(武陵雜稿) / 주세붕(周世鵬) / 문집

1. 원문 독음 (讀音)千一運啓(천일운계)。命牧得召伯之賢(명목득소백지현)。五百挺生(오백정생)。按部布文王之化(안부포문왕지화)。光被草木(광피초목)。信及豚魚(신급돈어)。伏惟相國閤下(복유상국합하)。仁煦春陽(인후춘양)。義張秋日(의장추일)。家傳道學(가전도학)。孟韓讓其溫醇(맹한양기온순)。身履淸風(신리청풍)。夷叔羞其粹白(이숙수기수백)。入藝苑而麟至(입예원이린지)。上蘭臺而鳳鳴(상란대이봉명)。國之楷模(국지해모)。士之楨榦(사지정간)。妙齡通籍靑瑣(묘령통적청쇄)。黑頭橫帶黃金(흑두횡대황금)。卿月孔明(경월공명)。方期輔弼之用(방기보필지용)。使星是重(사성시중)。忽膺詢宣之行(홀응순선지행)。徇曾參之志(순증삼지지)。而天寵益隆(이천총익륭)。攬范滂之轡(람범방지비)。而人望尤切(이인망우절)。兔三窟而失據(토삼굴이실거)。金四知而懷慙(금사지이회참)。若時..

카테고리 없음 202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