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스크랩] 嶺南學派

자라가슴 2006. 5. 16. 15:45
<< 영남학파 >> 
 
 조선시대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학문상 한 유파를 이름이다.

 

주로 이황(李滉)에 의해 제기된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 등 성리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학파를 가리킨다.

 

이이(李珥)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畿湖學派)와 더불어 한국 성리학의 쌍벽을 이루는데, 기호학파를 율곡학파(栗谷學派)라고 하는 데 대하여 영남학파는 퇴계학파(退溪學派)라고도 한다.

 

조선 초기 김종직(金宗直)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영남학파는 당대 사림(士林)을 대표한 학파로서 정계·학계·문단 등 여러 분야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비록 훈구파와 반목·대립하여 한때 정치 희생물이 되기도 했지만, 그들이 추구한 도학정신은 이후 학자들에게 이어져, 한 갈래는 조광조(趙光祖)를 통해 기호지방으로 전해졌고, 다른 한 갈래는 이언적(李彦迪)을 거쳐 이황·조식(曺植)에게 전승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황과 조식은 각각 영남 좌도와 우도에서 영남학파 영수로 추앙되어 문하에 많은 제자를 거느리면서 저명한 학자를 배출하였다.

이황과 조식은 서로 경우(敬友)로 대하였고, 그 문인들은 대개 두 사람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조식의 문인들은 광해군 때 정계에 다수 진출하여 주도권을 잡았으나, 광해군의 패륜과 폭정을 바로잡지 못한데다 선현을 모독한 정인홍(鄭仁弘)사건으로 물의를 빚었으며,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후 조식학파는 점차 그 학맥이 쇠잔하여지고, 퇴계학파는 그 학맥이 성해지면서 좌·우도의 구별이 사라지고 영남 학자들이 퇴계학파에 흡수되어 마침내 퇴계학파가 영남학파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황은 도덕이 깊고 인(仁)을 숭상하였으며, 조식은 기절(氣節)이 높고 의(義)를 숭상하였다는 평을 받고 있는 만큼, 두 사람의 학문 성향은 특색이 있었다.

영남학파의 학문적 관심은 이황 학설을 계승해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기호학파의 비판으로부터 사설(師說)을 변호하고 또한 기호학파를 역비판하려는 데 있었다.

대표 인물로는 조목(趙穆)·김성일(金誠一)·유성룡(柳成龍)·기대승(奇大升)·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정경세(鄭經世)·허목(許穆)·이현일(李玄逸)·이상정(李象靖)·이진상(李震相)·곽종석(郭鍾錫) 등이 있다.

한편, 영남학파에서는 1620년(광해군 12) 이황 문하의 양대고족(兩大高足)인 유성룡과 김성일을 호계서원(虎溪書院)에 추향(追享)할 적에 위차(位次) 선후를 놓고 양현(兩賢)의 자손과 후학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 오랫동안 시비가 분분하였다. 이 사건을 병호시비(屛虎是非) 또는 애학시비(厓鶴是非)라고 한다. 이로 인한 두 계열의 대립은 이후 계속되었는데, 유성룡 계열은 병산서원(屛山書院)을 근거지로 하고 김성일 계열은 호계서원을 독점하여 서로 대치함으로써, 마침내 병파와 호파로 갈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위차문제를 학통상 적전(嫡傳)과 결부시켜 다투다가 분파한 것일 뿐, 학문상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학파라고 하기는 어렵다. 병파나 호파 모두 이황의 주리설(主理說)에 귀일하고 있다.

유성룡을 중심으로 한 병파의 학통은 정경세·유진(柳袗)·유원지(柳元之)·정종로(鄭宗魯) 등으로 이어지고, 김성일을 중심으로 한 호파는 장흥효(張興孝)·이현일·이재(李栽)·이상정·유도원(柳道源) 등을 거쳐 이진상·곽종석에게 이어진다.

한편, 이황의 적전으로 조식의 문하에서도 수학하였던 정구의 학통은 근기지방(近畿地方)으로 전해져 별파(別派)를 형성한다. 鄭逑는 성리학과 예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역사·지리·의학 등 방대한 저술을 통해 <응용구시(應用救時)> 측면에 크게 유의함으로써 후일 허목을 통해 근기학파 학자들에게 발전 계승되어, 이익(李瀷)·안정복(安鼎福)·정약용(丁若鏞) 등 경세치용(經世致用)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황의 이기이원론·이기호발설 등을 주축으로 하여 출발한 영남학파 학설은 후대에 갈수록 주리적(主理的) 경향이 짙어졌는데, 그 주된 특성은 이우위설(理優位說)·이선기후설(理先氣後說) 단계에서 더 나아가 이주기자설(理主氣資說)·이활물론(理活物論)·이생기론(理生氣論)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주리적 경향은 이황의 성리설(性理設)에 이미 들어 있던 것으로, 기호학파 학설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그 특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출처 : 사림서당 요천시사
글쓴이 : 남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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