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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

자라가슴 2009. 9. 26. 00:27

    안수(安琇)

성명(姓名)

  안수(安琇)

본관(本貫)

 순흥(順興)

시대(時代)

  

자(字)

 

호(號)

 

이력(履歷)

 통사랑 군자감 직장공 휘 (通仕郞 軍資監 直長公 諱 )

직장공파(直長公派) 파조의 諱는 琇(수)이고 1390년(庚午年,고려 공양왕)에 태어났다. 공은 9世 판서공 휘 종약(從約)의 셋째아들이고 참찬공파조 구(玖)의 아우이다. 봉익대부 형조전서(奉翊大夫 形曹典書)를 지낸 원(8世,경질공)의 손자이다. 공께서는 생원(生員)을 거쳐 軍資監 直長(군자감 직장)을 지냈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경기도 파주에서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탐구하셨다. 공의 뛰어난 문장과 학행은 당대의 名儒(명유)로 존경과 추앙을 받으셨다. 배위 숙인 하음봉씨(配位 淑人 河陰奉氏)는 증조부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벽상삼중대광 도첨의정승을 지내고, 하음부원군(河陰府院君)에 봉해진 文謙公(문겸공)諱 天祐(천우)이고, 조고는 판도판서 질(質)이며 부친은 판중추 유검(由儉)이다.

슬하에는 창공(昌恭),창렴(昌廉),창직(昌直) 삼형제를 두었다. 장남인 창공은 충순위 병절교위를 지냈으며, 둘째인 창렴(昌廉)은 충순위(忠順衛) 감찰을 , 막내인 창직(昌直)은 부솔(副率)을 역임하였다. 세분의 당질되는 정민공(貞愍公) [당]의 아들이 辛巳誣獄(신사무옥)의 禍를 당해 처형되고, 이에 연좌(連坐)되자 창공, 창렴, 창직은 강원도 춘천땅으로 피신하여 은거 생활을 하였다. 막내인 副率公 昌直(부솔공 창직)은 그대로 춘천에서 살았고 昌恭(창공), 昌廉(창렴) 두 형제는 남하해서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포덕산 밑에 정착하여 신분을 감추고 은거하였다. 차츰 후손이 번성하여 지금은 함안,창원,진주지방 일대에 大姓을 이루고 있다. 직장공파(直長公派) 파조 휘 수(諱琇)의 묘소는 수원에 있다고 전하고 있으나 찾지 못하고 실전되었다. 1765년(英祖 乙酉)에 경남 함안군 산인면에 추모재를 건립하고 사단(祀壇)을 설단했다.

세사(歲祀)는 음력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