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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가슴 2015. 1. 30. 23:54

 

1 양원유집(陽園遺集) 陽園遺集卷十 昌原南社碑閣記 신기선 (申箕善) a_348_212c
 
 
陽園遺集卷十
 
 
 
 
 
昌原南社碑閣記 壬寅 a_348_212c
 


爲官而惠及於民。民立碑以頌之固美也。而猶或有濫觴者焉

。若爲士而功利施于一鄕。鄕人刻石而紀之則是世所罕有。而

非賢而有才者不能也。昌原距京師千里。濱海而爲邑。人視爲



荒徼之地。而有奇人奇事之可紀者。曩社倉之申設也。退隱安


君斗喆爲郡南面之社首。慨然曰國家之設是倉。將以安吾民


也。吾掌是社。其職豈止於出納社糓而已哉。以其餘力。當殖

社財以防徭役。建社塾以敎子弟。使倉廩
348_212d實而知禮節。不亦

善乎。於是盡捐其▼(米+氣)料以謀之。未幾社倉罷而君亦歿

焉。公之胤子貞錫。痛先志之未就。仍其舊貫。添以私財。爲

一面倡。一面士民翕然應之。不數年而事集。凡防稅設塾。悉

如退隱之志。民無捐瘠而子弟皆嚮學焉。咸曰吾輩之飮啄寢

興。藏修游泳。爲太平之民而興君子之俗者。翳誰之功。遂伐

石而爲碑。又建閣而覆之。嗚呼。退隱固賢矣。而貞錫甫之繼

述堂搆。又豈易得耶。身爲匹夫而功施一鄕。使斯人父子者。

得爲官而宰百里。則其澤惠詎可量耶。是碑也不可與邑治五里

亭林立而陣列者。同日
348_213a論也。是不可以無記。退隱藉順興。

晦軒文成公之後也。
 
신기선 양원
 
본관 평산(平山). 자 언여(言汝). 호 양원(陽園). 시호 문헌(文獻). 1877년(고종 14)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교리(校理)를 거쳐 1882년 관제개혁 때 참의경리내무아문사무(參議經理內務衙門事務) ·참의군국사무(參議軍國事務)를 역임한 뒤 부호군(副護軍)이 되었다. 1886년 갑신정변(甲申政變) 때에 김옥균(金玉均)의 일파였다는 죄로 전라도 여도(呂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1894년 갑오개혁으로 등용되어 김홍집(金弘集) 내각에서 공부(工部)를 거쳐 내부 ·법부 ·학부 대신을 역임, 참정(參政)에 이르렀다. 후에 대동학회장(大東學會長) ·장례원경(掌禮院卿) ·수학원장(修學院長) 등을 지냈다. 저서에 《유학경위(儒學經緯)》가 있다.
 
신기선 [, 1851~1909]
 
 
   
 
 
 
요약
조선 후기 각료. 갑오개혁으로 등용되어 김홍집 내각에서 공부를 거쳐 내부 ·법부 · 학부 대신을 역임, 참정에 이르렀다. 후에 대동학회장 · 장례원경 · 수학원장 등을 지냈다. 저서에《유학경위》가 있다.
 
본관 평산()
양원()
별칭 자 언여(), 시호 문헌()
주요저서 《유학경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