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增)安慜 順興人居咸安文成公裕十一代孫官至監察壬辰春聞文成公詩板在本邑甘露寺而 年久朽傷往于寺改刊之聞倭寇犯府城與緇徒百餘人直赴邑城遇賊於立石江上力戰死節
安慜 順興人號茅軒官監察壬辰倡義赴府城戰殉
戊子〕朴忠卿崔世濟安 慶李楫全彭齡李瀞李仁勛安慜魚 泳洙周永昌趙信道金用秋李明▼(欽/心)
3. 저자 소개 : 安憙(1551-1613)
安憙의 자는 彦優, 호는 竹溪이며, 본관은 順興이다. 고려시대 예악을 흥기하고 학교를 설립하여 宗師로 추숭된 安珦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장사랑을 지낸 安軫이며, 어머니는 광주안씨로 생원 安宅의 딸이다.
부친의 권유로 과거공부를 하였으나 배움에는 內外輕重의 구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1576년 26세에 진사가 되고, 1585년 35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陞補로 성균관 전적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김해에 우거하고 있었는데, 列郡이 와해되는 것을 보고 의병을 일으켜 1백여 차례나 싸웠다. 殘兵을 이끌고 晉陽城에 들어가 싸우다 성이 함락되어 세 아들을 모두 잃었다. 안희의 형인 감찰을 지낸 安慜도 순절하였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아버지의 遺命에 따라 豊城 白雲洞으로 들어갔다. 1607년 57세에 형조정랑에 제수되었으며, 외직으로는 단양군수·대구부사를 역임하였다. 가는 곳마다 치적이 있었다.
어버이를 모시는 효와 선조를 받드는 정성은 軍中에서도 폐하지 않았으며, 許景胤·黃世悅과 함께 山海亭의 옛 터에 南冥 曺植을 제향하는 신산서원을 창건하였다. 息菴 黃暹, 樂齋 徐思遠, 弦齋 李克承, 栢巖 金玏, 栖巖 鄭之獜, 復齋 李道孜, 雲壑 趙平 등은 도의로 강마한 사람들이며, 김해·密陽의 교수로 있을 적에 따르는 후학들이 많았다.
전취부인은 흥해최씨로 목사 崔崙의 딸이며, 후취부인은 파평윤씨로 尹鐸의 딸이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