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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장군

자라가슴 2014. 3. 31. 11:14

 

요약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 고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1차 진주싸움을 승리로 이끌고 성을 지켜냈으나 2차 진주싸움에는 일본군의 세력이 너무 커 응원할 것을 포기했다.
  • 출생-사망

    1561 ~ 1618

  • 본관

    함안

  • 명숙

  • 운포

  • 활동분야

    군사

  • 주요작품

    《제정집》

본관 함안(咸安). 자 명숙(明淑). 호 운포(雲圃). 이황(李滉)에게 《소학》을 배웠으며 무예를 겸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 고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 곽재우(郭再祐) ·최강(崔堈)과 함께 목사 김시민(金時敏)이 분전하고 있는 진주성에 합세하여 1차 진주싸움을 승리로 이끌고 성을 지켜냈다. 그러나 1593년의 2차 진주싸움에는 일본군의 세력이 너무 커서 응원할 것을 포기하였다.

진주성에서의 공으로 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고 훈련원정에 임명되었으며 권무과(勸武科)에 급제하고 양산군수가 되었다. 1614년(광해군 6) 선전관에 임명되었으나 북인에 의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출하자는 논의가 일어나자 상경 도중에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해 가을에 삼도통제우후(三道統制虞侯)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이듬해에는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도산서원(道山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