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安熹 1551~1613) 조선 중기/문신 함안의 모곡리에서 증(贈) 형조참의(刑曹參議) 안공진(安公軫)과 광주 안씨(廣州安氏) 택(宅)의 딸 사 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자는 언우(彦優)이다. 1585년(선조 18) 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정 자 승훈랑 성균관 전적 등의 벼슬을 지냈다. 1588년(선조 21) 김해에 신산서원(新山書院)을 건립하고 남 명 선생과 송계(松溪) 신계성(申季誠)을 봉안하고자 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김해 금이산(金伊山)에 들어가 격문으로 동지들을 달래, 흩어지 고 달아난 사람들을 불러 모집하니 잠깐 사이에 1,000여 인이 모였다고 한다. 적의 길을 차단하여 끊고 크고 작은 전투로 물리치는 등 김해에서 창의하여 창원으로의 적로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