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항일지사 안용봉선생

자라가슴 2006. 8. 9. 14:26
역사]창원 상남면 출신 좌파 항일지사 안용봉 선생  
적색노조 동맹파업…일제로부터 고문…이승만 정권에 학살  


김주완 부장 wan@idomin.com



국가보훈처가 올해부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도 서훈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한 가운데, 1930년대 창원 상남면 출신의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경성(서울)지역에서 ‘적색노동조합그룹’을 조직, 10여년 간 동맹파업 등을 주도하며 항일투쟁을 벌여왔던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3월부터 부친의 역사를 찾아나선 퇴직 교원 안모씨와 함께 국사편찬위원회와 정부기록보존소의 국내항일운동 문서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퇴직교사 안모씨와 정부기록보존소 등서 기록 확인

    

안용봉 선생.

그러나 이를 통해 공적이 밝혀진 안용봉(1912년생) 지사는 안타깝게도 해방 이후 민족분단의 고착화를 우려해 단독정부 수립의 반대입장에 섰다가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한국전쟁 당시 재판절차도 없이 학살된 것으로 드러나 현대사의 모순을 또 한번 입증해주고 있다.

정부기록보존소에 남아있던 일제의 치안유지법 위반사건 재판기록에 따르면 안용봉 지사는 창원 상남면 퇴촌리 출생으로 사립 퇴촌야학회를 수료하고 1928년 부산의 한 방직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33년 경성으로 옮겨 역시 창원 출신인 안승락·안창대 등과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돼 있다.

이어 안 지사는 경성에서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해 “내부에서 우량분자를 포섭, (…) 대일본제국에서 이탈, 독립코자 국체를 변혁”하는 활동을 계속해왔다는 것.특히 그는 34~35년 유명한 사회주의 운동가인 김희성·권우성 등과 함께 좌파 내의 파벌운동을 비판하며 대중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의하고 경성의 한 제사공장 노동자 중 남성 15명, 여성 50명이 해고당한 것을 계기로 해고수당 3개월분을 요구하며 전 직공 동맹파업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같은 혐의로 안 지사는 1940년 9월 검거돼 이듬해 3월 19일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아 복역하게 된다.

안 지사는 또 해방 이후인 47년 창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광복 2주년 기념식장에 연사로 나와 “해방이 되었으되 알짜배기 해방이 아니라 껍데기 해방”이라며 당시 남북분단의 고착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북 분단 탄식하시던 모습 선해”

그는 48년 5월 10일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남한의 총선거 때도 “이 선거는 해선 안된다. 우리만 선거하면 남북이 영원히 분단된다”며 크게 애통해 한 것으로 지인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이같은 입장으로 이승만 정권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그는 48년 단독정부 수립 이후 진해경찰서에 수차례 끌려가 고초를 당했으며, 끝내 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진해경찰서에서 끌려나가 재판절차도 없이 삼정자동의 한 산골짜기에서 학살됐다.

안 지사의 아들은 “일제 땐 항일투쟁으로 왜놈들에게 온갖 고초를 당했고, 해방 후엔 단지 당시 집권세력과 정치적 입장이 달랐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붙들려 살다시피 하다가 학살됐다”며 “47년 몸이 병들었을 때 왜경에 고문당한 흉터를 보여주며 ‘내가 왜놈 총에 맞아 죽어야지, 병들어 죽는 건 헛된 죽음’이라고 탄식하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친의 항일운동으로 어머니까지 일본 경찰에 끌려가 수차례 고문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끝내 돌아가셨고, 우리는 외가집에서 어렵게 자랐다”며 “지나간 고통을 다 보상받을 순 없겠지만, 선친의 명예만이라도 되찾을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2005년 0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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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경남도민일보 사회부장 겸 인터넷팀장입니다.

창원 출신 독립운동가 안용봉 선생 건국포장

국가보훈처는 광복 61주년 광복절을 맞아 만주·노령 지역의 무장투쟁가 박영 선생을 비롯해 평남 강서에서 3·1운동을 하다 체포돼 옥중 순국한 고지형 선생, 국내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이재유 선생 등 313명의 순국 열사와 애국지사를 포상한다.

이 중에는 경남도민일보가 처음 항일운동 사실을 발굴, 세상에 알린 창원 상남면 출신의 사회주의 활동가 안용봉 선생(1912년생)도 포함돼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의 훈격은 건국훈장 145명(독립장 3, 애국장 43, 애족장 99), 건국포장 47명, 대통령 표창 121명 등이다. 안용봉 선생은 이번 포상에서 건국포장을 수상하게 된다.

안 지사는 1930년대 창원 상남면 출신 사회주의 활동가들 중 한 명이었으며, 경성(서울)지역에서 ‘노동조합그룹’을 조직, 10여년 동안 동맹파업 등을 주도하며, 항일투쟁을 벌여왔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부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도 서훈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안 지사 외에도 경남 함안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손종일 선생은 지난 1993년 손자가 포상신청을 했지만 공적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포상을 하지 못하고 지내오다 이번에 수집한 자료인 ‘수형인명표폐기목록’을 통해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돼 10여년 만에 애족장을 추서받게 됐다.

이번 광복절 포상자 313명 중 232명은 정부에서 자료를 찾아 포상하게 됐으며, 앞으로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까지 500여명을 포상할 계획이다.




    

▲ 안용봉 선생.


안용봉 선생의 항일운동 공적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해 5월 경남도민일보 지면을 통해서다.

당시 경남도민일보는 1930년대 창원 상남면 출신의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경성(서울)지역에서 ‘적색노동조합그룹’을 조직, 10여년 동안 동맹파업 등을 주도하며 항일투쟁을 벌여왔던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같은 사실은 부친의 역사를 찾아 나선 퇴직 교원 안인영(70·마산시 내서읍)씨와 함께 국사편찬위원회와 정부기록보존소의 국내항일운동 문서를 통해 확인된 것.

정부기록보존소에 남아있던 일제의 치안유지법 위반사건 재판기록에 따르면 안용봉 선생은 창원 상남면 퇴촌리 출생으로 사립 퇴촌야학회를 수료하고, 1928년 부산의 한 방직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이후 1933년 경성으로 옮겨 역시 창원 출신인 안승락·안창대 등과 함께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돼 있다.

방직공장 적색노조 조직 동맹파업 주도

이어 안 지사는 경성에서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해 ‘내부에서 우량분자를 포섭, …… 대일본제국에서 이탈, 독립코자 국체를 변혁’하는 활동을 계속해왔다는 것.

특히 안 지사는 34~35년 유명한 사회주의 운동가인 김희성·권우성 등과 함께 좌파 내의 파벌운동을 비판하며 대중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의하고, 경성의 한 제사공장 노동자 중 남성 15명, 여성 50명이 해고당한 것을 계기로 해고수당 3개월 분을 요구하며 전 직공 동맹파업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혐의로 안 지사는 1940년 9월 검거돼 이듬해 3월 19일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아 복역하게 된다.

해방 후 단독정부 수립반대, 이승만 정권 미움

형을 마친 안 지사는 1947년 창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광복 2주년 기념식장에서 “지금의 해방은 껍데기 해방”이라 연설하고, 이듬해 다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남한 총선거를 “남과 북으로 영원히 가르기 위한 선거”라며 반대의 입장을 확고하게 했다.

이후 안 지사는 이승만 정권의 미움을 사 1948년 단독정부 수립 이후 진해경찰서에 여러 차례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했으며, 끝내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다시 진해경찰서에 끌려가 재판절차 없이 창원 삼정자동의 한 산골짜기에서 학살돼 생을 마감했다.

    








안희상 (2006-06-20 16:27:47)  
국내외 항일운동 문서



문서철명 사상에 관한 정보철(3)

원문책명 思想에 關한 情報綴(3)

문서제목 金熙星 一派의 꼼그룹事件 檢擧에 관한 건

문서번호 京高特秘 제415호

발송자 京畿道 警察部長

수신자 警務局長,京城地方法院 檢事正

발송일자 1937-02-20

수신일자 1937-02-22

색인어
이름 金熙星, 李載裕, 白潤赫, 朴仁善, 三宅鹿之助, 權榮台, 徐球源, 權又成, 安承樂, 安昌大, 尹淳達, 崔秉稷, 朴溫, 朴寅椿, 文庸培, 權泰圭, 許均, 安鍾瑞, 鄭泰憲, 金月玉, 姜彈求, 李柱夢, 崔慶昌, 崔慶姬, 洪順廻, 安龍鳳, 安任均, 閔泰福, 李悳洙(李春三), 洪華順, 徐華金, 姜鈗, 朴金善, 李內禧, 朴寅椿, 朴鍾烈, 鄭基榮, 李敬禮, 鄭鎭東, 全東國, 朴鍾大, 崔秉道, 李仁榮, 金庚柱, 金壽福, 具龍振, 池相殷, 崔二周, 魯一, 金在鳳, 孫在熙, 崔孝植, 金聲哲, 李進雨, 金庚訓, 崔今順, 朴丙玉, 李來姬, 朴容植, 李晳熙, 柳海吉, 崔學基, 金忠國, 崔浩熊, 文庸培, 洪鍾禮, 金春國, 洪鍾穆, 朴容植(容赫), 朴昌洙, 鄭昌永, 崔明玉, 洪順玉, 崔承昌, 金玉熙, 金忠國, 李順奉, 郭泳夔, 李敬文, 金泰淑, 李哲熙, 崔孝植, 孫在熙, 曺慶鎬, 池相殷, 具龍振, 金龍鎬, 池瑞佑, 金聖權
단체 콤그룹, 朝鮮共産黨再建京城準備그룹, 共産大學, 西大門警察署, 鍾路警察署, 프로핀테른, 中央醫院, 京城地方法院, 서울護謨工場, 京城中央電話局, 遞友相助會, 東大門警察署, 岩村製絲工場, 團成社, 白岳會, 明治製藥, 朝鮮共産黨再建京城트로이카, 朝鮮新聞社, 間島共産黨, 朝鮮製絲工場, 和信商會, 昌和工業株式會社, 龍山工作製紙工場, 京城電耭學校, 京電變電所, 東一銀行, 鐵道局 京城工場, 普成高普, 京城女子商業學校, 經學院, 京城商工學校, 儆新學校, 朝鮮日報社
사건 赤色勞動組合 組織, 反帝同盟 組織, 間島共産黨 死刑反對鬪爭, 龍山工作製紙工場內 相助會 組織
지명 明治町, 嘉會町, 翠雲亭, 長橋町, 笠井町, 平壤, 阿峴町, 雲泥町, 黃金町, 本町, 光熙町, 蓬萊町, 太平通, 靑葉町, 丹僑町, 觀水町, 新設町, 永登浦, 齊洞, 慶雲町, 惠化町, 長谷川町, 國一館, 桃花町, 綠屋書店, 鐵原, 洪原, 苑西町, 水標町禮拜堂, 樂園會館, 釜山, 中學町, 獎忠壇公園, 桂洞, 瑞麟町, 明倫町, 康津, 鳳翼町, 水原, 城湖面, 西界町, 典農町, 淸凉町, 授恩町, 唐人町, 昭格町, 富川, 寬勳町, 徽慶町, 安城, 奉化, 大興町, 西大門町, 東氷庫町, 仁義町, 益善町
기타 治安維持法違反, 마르크스資本論, 婦人과 勞動組合話, 아래로부터의 統一戰線, 革命歌, 赤旗歌
안희상 (2006-06-20 16:29:24)  
국내외 항일운동 문서



문서철명 사상에 관한 정보(12)

원문책명 思想에 關한 情報(12)

문서제목 權又成一派의 赤勞大衆그룹事件 等 起訴中止者 送局의 건

문서번호 京高特秘 제2098호

발송자 京畿道警察部長

수신자 京城地方法院 檢事正 등

발송일자 1940-12-16

색인어
이름 安龍鳳(安家龍鳳), 權又成, 金熙星, 安承樂, 李永燮
단체 赤勞大衆그룹
사건 權又成一派의 赤勞大衆그룹사건
지명 昌原
기타 治安維持法違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