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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촌동안서

자라가슴 2015. 1. 16. 20:19

村以退名之者其義大矣哉難進難退 君子之出處 係焉

知進知退聖人之極功存焉    

退藏於此果能有顧名思義以窺其곤域之萬一者乎

坤之卦辭 曰 先迷 後得此得退之效也 

伯程子 曰 無欲上人此知退之方也 

居是村者講究乎 比箇義理不援上不凌下則何患乎

先公後私之不得其道也

大抵 昌之爲府 環 四方 五十里 東兵于 金海西接于

咸安北 渡靈山 南越 熊川 大海橫 其 南洛江流 

其 北江 海之利不爲小矣

海山 雄云 懼懼 峽小而野多 土原 (月+無)(月+無) 稼穡之功 亦云豊矣
戶過 七千班爲十之二三 則 小民之謠 役比他 又 歇矣

夫何挽近 村落凋殘民無恒心理 絶絃誦之상戶無瞿甁之儲 昔之乘肥者

今皆是短褐父之致 富者傳其子而飽飽未知人謀不藏之致歟

抑亦 邑居失利之由歟 此曷故焉 設漕倉 五十年許多般人 負逋京倉每年 生微多至

七八千小不下三四千 三隣騷撓九族乃雄直純屯
十餘年但쾌( 人+會)舞弄監校肆 橫厚 收勒斂終歲旴旴

執空藁而怨咨民何以 料生 財何 不耗褐乎

若此不己則不出 十數年沿海之民不知稅駕於何地

此不待明者而得矣

爲其民首者위(言+委)之以 難於着手沁沁 泄泄

看作尋常首亦民衆 中一人 居是村者

今冕五六而其所矯구之方實無長策之可 言者

言念民勢寧不大可寒心也 哉無己則 有一焉

古之人有言曰仰規星日霜露之變俯察昆蟲 草木之化以知

天時以授民事 女服事于 內男服事乎

外上以 誠受下下以 忠利上父父子子夫夫婦婦 養老而玆幼 食力而助弱其 祭祀也

時其 燕響也 節惟 玆退之大小民人於斯數者 勖之哉 


‘마을을 퇴(退)라 이름 붙인 것, 그 뜻이 참으로 크도다. 나아가기도 어렵고 물러서기도 어려우니, 군자의 출처(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의 기준이 여기에 달려 있다.

진퇴를 아는 것, 그것은 성인의 지극한 공이 머무는 곳이다.

퇴(退)라는 이름 안에 은둔의 뜻을 담았으니, 과연 그 이름에서 그 문(門)과 영역의 만분의 일이라도 엿볼 수 있겠는가.

<주역> ‘곤(坤)’괘의 괘사에 이르기를 ‘처음엔 미혹하나 뒤에는 얻는다’ 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퇴(退)의 효과를 말한 것이다.

정이천(程子)은 “위로 오르려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했으니, 이것이 곧 퇴를 아는 방법이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의리(義理)를 강구하며, 위로 아첨하지 않고 아래로 억누르지 않으니, 어찌 ‘공(公)을 앞세우고 사(私)를 뒤로 두는’ 도리를 잃을까 걱정하겠는가.

대체로 창(昌)은 고을이 되어 사방으로 오십 리를 두르고 있으며, 동쪽은 금해(金海)의 군사에 닿고, 서쪽은 함안(咸安), 북쪽은 영산(靈山)을 건너며, 남쪽은 웅천(熊川)을 넘어 큰 바다에 이르며, 남으로는 낙강(洛江)이 흐르고 북으로는 강과 바다의 이익이 적지 않다.

산과 바다가 장대하게 둘러 있고, 협소하지만 들이 많으며, 토지는 비옥하고 농사가 풍요롭다.

호수(戶數)는 7천을 넘고, 십중 이삼은 조세에 나뉘어 있으니,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에도 부역이 예전보다 줄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근래에는 마을이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일정한 마음을 지니지 못하며, 책 읽는 소리가 끊기고, 집집마다 쌀독이 비었단 말인가?

예전에는 살찐 말을 타던 이들도 지금은 모두 짧은 도포 입은 노부(老父)의 모습이 되었고, 부유했던 이들은 그 자손에게 재산을 물려주었지만 배불리 먹을 뿐, 사람의 계책을 숨기지 못한 탓인지, 혹은 읍에 살며 이익을 놓친 까닭인지, 이는 무엇 때문인가?

조창(漕倉, 세곡 저장 창고)을 설치한 지 50년이 되었건만, 여러 사람이 세금을 지고 도망갔으며, 경창(京倉)의 해마다 생기는 손해는 적게는 삼사천 석, 많게는 칠팔천 석에 달한다.

이웃 세 마을은 소란스럽고, 구족(九族)도 안정되지 못하며, 십여 년 동안 중간 상인과 감독관들이 날뛰며 제멋대로 행세하였고, 거두고 징수함이 매우 강압적이었다.

백성들은 온종일 빈 볏짚을 쥐고 탄식하며 살았으니, 민생은 어디에 기대고, 재정은 어찌하여 이토록 피폐해졌단 말인가?

이러한 상황이 그치지 않는다면, 십여 년 안에 해안의 백성들은 세금을 어디에 바쳐야 할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것은 밝은 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백성을 다스리는 이들이 말하기를 “손대기 어려운 일”이라며 책임을 미루고, 사소한 일로 여기며, 스스로를 백성 중 한 사람처럼 여기니,

이 마을에 사는 자가 지금 다섯, 여섯이나 되어도 그들이 꾀하는 바른 방법은 없고, 그 말하는 자들 또한 민심을 생각함에 참으로 서늘하고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로 아무도 없다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위를 우러러 해와 별, 서리와 이슬의 변화를 살피고, 아래를 굽어 곤충과 초목의 생장을 관찰하여 하늘의 시기를 알아 백성의 일을 맡기며,

여성은 집안을 섬기고 남성은 바깥일을 감당하며,

윗사람은 진실함으로 아랫사람의 충성과 이익을 받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우며,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다워야 하며,

늙은 이를 봉양하고 어린 아이를 기르며, 일할 힘이 있는 사람은 약한 이를 도우며,

제사는 때에 맞추고 잔치는 절도를 지켜야 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퇴(退)’의 뜻이며, 크고 작은 백성들이 이에 힘써야 할 것이다.

村以退名之者其義大矣哉 難進難退 君子之出處 係焉

知進知退 聖人之極功存焉

이 마을을 '퇴(退)'라 이름 지은 까닭은 그 뜻이 참으로 크도다. 나아가기도 어렵고 물러나기도 어려운 것이니, 군자의 처세가 이에 달려 있다.

나아갈 줄도 알고 물러날 줄도 아는 것이 성인의 지극한 공력에 있다.


退藏於此 果能有顧名思義以窺其阃域之萬一者乎

이 퇴(退)의 뜻이 이곳에 감추어져 있으니, 참으로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여 그 경계를 일별이라도 엿볼 수 있는 자가 과연 있는가?


坤之卦辭 曰 先迷 後得 此得退之效也

伯程子 曰 無欲上人 此知退之方也

《주역》의 '곤(坤)' 괘 사(辭)에 이르길, "먼저 미혹하나 뒤에 얻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퇴의 효과를 말한 것이다.

정이천(程頤) 선생도 말씀하시길, "욕심이 없으면 윗사람이 된다" 하셨으니, 이는 물러남을 아는 방법이다.


居是村者講究乎 比箇義理 不援上 不凌下 則何患乎

先公後私之不得其道也

이 마을에 사는 자가 이 의리를 익히고 실천한다면, 위를 끌어당기지 않고 아래를 억누르지 않으니, 어찌 근심이 있으랴.

공을 앞세우고 사를 뒤로 두는 도리를 잃지 않는 것이다.


大抵 昌之爲府 環四方五十里 東兵于金海 西接于咸安 北渡靈山 南越熊川 大海橫其南 洛江流其北 江海之利不爲小矣

대체로 창원은 고을로서 사방 오십 리를 둘렀고, 동으로는 김해의 병진에 맞닿고, 서로는 함안에 접하며, 북으로는 영산을 건너고, 남으로는 웅천을 넘어 바다가 남쪽에 가로놓이고 낙강이 북쪽으로 흐르니, 강과 바다의 이로움이 작지 않다.


海山雄云 懼懼 峽小而野多 土原膴膴 稼穡之功 亦云豊矣

바다와 산은 웅장하고 두려울 정도이며, 협곡은 작고 들판은 많으며, 토지는 기름지고 곡식을 심는 노력도 또한 풍족하다.


戶過七千 班爲十之二三 則小民之謠役比他又歇矣

호수는 칠천이 넘고, 조세와 부역이 십중 이삼으로 배정되니, 백성의 노고와 부역이 다른 곳보다 심하다.


夫何挽近 村落凋殘 民無恒心理 絶絃誦之詳 戶無瞿甁之儲 昔之乘肥者

今皆是短褐父之致 富者傳其子而飽飽 未知人謀不藏之致歟 抑亦 邑居失利之由歟

그런데 어찌하여 가까운 마을이 이리도 피폐해졌는가. 백성들은 일정한 마음이 없고, 글 읽는 소리는 끊기고, 집집마다 저장된 식량조차 없다.

예전엔 풍족하게 살던 자들이, 지금은 모두 거친 옷 입은 백성으로 전락하였다.

부자는 자식에게 부를 물려주어 잘 먹고살지만, 사람들의 지혜가 감추이지 않아서 이런가? 혹은 읍 거주에서의 이익 상실 때문인가?


此曷故焉 設漕倉五十年 許多般人 負逋京倉 每年生微 多至七八千 小不下三四千 三隣騷撓 九族乃雄直純屯

이것이 어찌된 연유인가? 조창(漕倉: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이 설치된 지 50년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서울 조창에 빚을 지고, 해마다 가난하게 사는 자가 많을 때는 78천, 적어도 34천은 되니, 삼린(三隣: 이웃 마을)이 시끄럽고, 구족(九族: 친족)까지도 힘들어한다.


十餘年但儈舞弄監校肆 橫厚 收勒斂 終歲旴旴 執空藁而怨咨 民何以料生 財何不耗褐乎

십여 년 동안 다만 중간상인과 감찰자들이 농간을 부리고, 거칠고 무도하게 거두고 착취하니, 온 해가 지나도록 백성은 빈 짚단만 붙들고 원망을 쏟아낸다.

백성은 어찌 살아갈 방도를 마련하랴? 재물은 어찌 거칠옷마저 남지 않게 되랴?


若此不己 則不出十數年 沿海之民不知稅駕於何地 此不待明者而得矣

이런 상황이 멈추지 않는다면, 십수 년이 지나지 않아 해안의 백성들은 수레의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게 될 것이다.

이는 총명한 자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자명한 일이다.


爲其民首者諉之以 難於着手 沁沁 泄泄 看作尋常 首亦民衆 中一人 居是村者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는 자는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며 핑계를 대고, 대충 넘기며, 사소한 일로 여긴다.

우두머리도 결국은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今冕五六而其所矯구之方實無長策之可言者 言念民勢寧不大可寒心也哉 無己則有一焉

지금까지 다섯 여섯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지만, 고칠 수 있는 장기적인 방책은 하나도 없었으니,

백성의 형편을 생각할 때 어찌 가슴이 서늘하지 않겠는가. 내가 아니면 누군가 하나쯤은 있으리라.


古之人有言曰 仰規星日霜露之變 俯察昆蟲草木之化 以知天時以授民事

옛 사람이 말하기를, 하늘을 우러러 별과 해, 서리와 이슬의 변화를 살피고,

아래로는 벌레와 풀, 나무의 변화까지 살펴 하늘의 시기를 알고 백성의 일에 이를 전하라 하였다.


女服事于內 男服事乎外 上以誠受下 下以忠利上 父父子子夫夫婦婦 養老而玆幼 食力而助弱

여자는 집 안 일을 하고, 남자는 바깥일을 하며,

윗사람은 성실하게 아랫사람을 받아들이고, 아랫사람은 충성과 이익으로 윗사람을 받들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답게 하며,

노인을 봉양하고 어린이를 기르며, 힘을 써 일하고 약한 이를 돕는다.


其祭祀也時 其燕響也節 惟玆退之大小民人於斯數者 勖之哉

제사를 지내는 데는 때를 맞추고, 잔치를 하는 데는 절도를 지킨다.

이 '퇴(退)'라는 곳의 크고 작은 백성들이 이 여러 조항을 힘써 실천하라.


이 글은 마을을 '퇴(退)'라고 명명한 철학적 의의와 함께, 현실의 피폐함, 관리들의 무능과 착취, 그리고 백성의 고단한 삶을 통렬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유가적 이상에 입각한 공동체 질서를 회복하자는 강한 촉구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깊은 시사점을 주는 통찰이기도 합니다.

원하신다면 이 글의 주제를 더 간결하게 요약해드릴 수도 있고, 이를 토대로 현대적 에세이나 산문으로 재구성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나의 말:

산문으로

ChatGPT의 말:

다음은 위의 한문 문장을 현대어 산문으로 풀어 옮긴 것입니다. 시대의 무게를 품으면서도 오늘날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한 진중한 어조로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퇴촌의 이름을 생각하다

이 마을의 이름은 ‘퇴(退)’다. 물러남을 뜻하는 이 한 글자 속에는 쉬이 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뜻이 깃들어 있다. 나아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물러나는 일이다. 군자가 세상에 나아가고 물러남은 바로 이 어려움 속에서 결정된다. 언제 나서야 하고 언제 물러나야 할지를 아는 것, 그것이 성인의 지극한 덕행이다.

이 ‘퇴’라는 이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다. 이름 속에 그 정신이 숨어 있다. 이름의 뜻을 되새겨 본다면, 어쩌면 우리는 이 마을이 지닌 정신적 경계, 그 일단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역》의 ‘곤’괘는 말한다. “처음에는 미혹하나, 뒤에는 얻는다.” 이것이야말로 물러남이 주는 진정한 이득이다. 또 정이천 선생은 “욕심이 없으면 윗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그것이 바로 물러남을 아는 방식이다. 이 마을에 사는 이들이 이런 이치를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면, 윗사람에게 아첨하지 않고 아랫사람을 억누르지 않을 것이니, 무슨 걱정이 있을까. 공적인 일을 먼저 하고 사사로운 욕심을 나중으로 미룰 줄 아는 도리가 바로 그 시작이다.

창원은 사방으로 오십 리를 둘러, 동으로는 김해, 서로는 함안, 북으로는 영산을 건너고, 남으로는 웅천을 지나 바다와 맞닿는다. 바다가 남에 가로놓이고, 낙동강은 북으로 흐른다. 육지와 바다가 함께 주는 이득이 작지 않다. 산은 크고, 들판은 넓고 비옥하며, 농사의 결실도 풍부하다. 호구 수는 칠천을 넘지만, 조세와 부역의 부담은 크다. 백성들은 이를 두고 다른 고을보다도 고되다 말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마을은 피폐해졌는가. 백성은 삶에 지쳐 마음이 허하고, 글 읽는 소리는 끊겼으며, 집집마다 양식도 없다. 한때 기름진 삶을 누리던 이들이, 이제는 남루한 옷을 입고 고생하는 모습뿐이다. 부자는 자식에게 부를 물려주며 잘 먹고살지만, 왜 이렇게 되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과연 사람들의 지혜가 감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읍에 사는 이들이 이득을 잃었기 때문인가.

조창이 세워진 지 오십 년,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창고에 빚을 졌다. 매년 가난한 자들이 수천 명, 많게는 칠팔천 명에 이르니, 이웃마을도 동요하고 친족들조차 삶을 버겁게 살아간다. 십여 년 동안 이익을 탐하는 자들이 행정관을 조종하고, 무리하게 세금을 거두며 백성은 온 해 농사에도 빈 껍데기뿐이다. 백성은 무엇으로 삶을 지탱하고, 어떻게 재물을 아끼겠는가.

이대로 간다면 십수 년 안에 연해의 백성들은 세금이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는 총명한 자를 기다릴 것도 없이 명백한 일이다.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할 자들은 “시작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일하기를 꺼리고, 사소한 일로 여겨 넘긴다. 하지만 지도자 또한 결국은 민중 가운데 한 사람이다. 지금껏 다섯 여섯 번이나 이 문제를 바로잡고자 했으나, 변화를 이끌어낼 근본 대책은 없었다. 백성의 처지를 생각하면 어찌 가슴이 서늘해지지 않겠는가. 나 아니면 누군가 하나쯤은 나서야 할 것이다.

옛사람은 말하였다. “하늘을 우러러 별과 해, 서리와 이슬의 변화를 살피고, 땅을 굽어 벌레와 초목의 변화를 관찰하라. 그래야 하늘의 때를 알고 백성의 삶에 이바지할 수 있다.” 여자는 안에서, 남자는 밖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윗사람은 진심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며, 아랫사람은 충성과 이익으로 윗사람을 받든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우며, 남편과 아내도 제자리를 지키고, 노인을 봉양하고 어린이를 돌보며, 스스로 일하며 약한 이들을 돕는다. 제사는 때에 맞게, 잔치는 절도 있게 한다.

‘퇴’라 이름 붙인 이 마을의 백성들이여, 이러한 도리를 마음에 새기고 힘써 실천하라. 그리하면 이 마을은 스스로를 지켜낼 것이다.


이 글은 고전적 문투를 현대적 감각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더 짧게 요약하거나, 수필이나 연설문 형태로도 다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원하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나의 말:

수필

ChatGPT의 말:

다음은 위 한문 문장을 현대적인 수필 형식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고전의 깊이와 현실에 대한 성찰이 어우러진 형태로 다듬었습니다.


‘퇴(退)’라는 마을 이름

내가 사는 마을의 이름은 ‘퇴(退)’다. 물러남을 뜻하는 이 한 글자 속에, 나는 오래도록 사람과 삶의 도리를 되새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며 늘 직면하는 물음이 있다. 나아갈 것인가, 물러날 것인가. 우리는 보통 나아감을 덕이라 여기지만, 실상 물러남이야말로 더 큰 지혜를 요한다. 때를 알고 물러나는 일, 욕심 없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군자의 도리이고 성인의 공덕이다.

‘퇴’라는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조용한 가르침이다. 물러남의 덕을 배우고, 자신의 자리를 알고, 위를 받들되 아첨하지 않고, 아래를 돌보되 업신여기지 않는 삶. 그런 삶을 산다면 어찌 이 마을이 평화롭지 않겠는가.

이 마을은 사방으로 산과 강,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땅은 비옥하고 농사도 잘 되며, 예로부터 인심도 넉넉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마을은 점점 쇠해졌다. 사람들은 말이 없고,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예전엔 넉넉했던 집들이 이제는 양식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누가 이 마을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부자들은 여전히 풍요롭다.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도 있고, 끼니 걱정도 없다. 그러나 다수의 백성은 빚에 허덕이며 산다. 조창이 생긴 지 수십 년, 해마다 빚을 지고 쌀을 메워야 하는 이들이 수천 명에 이른다. 부역과 세금은 무겁고, 민심은 지쳐가고 있다. 이 마을의 쇠락은 단지 가난해서가 아니라, 삶의 근간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하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할 수 없다고, 어려운 일이라고. 그러나 백성 위에 선 자가 그 백성과 다를 수 있겠는가. 지도자 역시 이 마을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

옛사람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계절을 알았고, 땅의 풀벌레를 보고 변화를 읽었다. 하늘의 이치를 따라 농사를 짓고, 사람의 도리를 따라 가정을 이뤘다. 남녀는 각기 맡은 바를 다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며,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했다. 늙은 이를 공경하고, 어린이를 보살폈으며, 일하는 자를 돕고, 약한 자를 보듬었다. 제사는 정성껏, 잔치는 절도 있게.

그러한 삶이 곧 이 ‘퇴촌’의 이념이 아닐까. 물러섬은 포기함이 아니라 지킴이고, 피함이 아니라 머무름이다. 바른 도리를 지켜내기 위한 선택, 그것이 물러남이다. 지금 이 마을이 다시 일어서려면, 이 이름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한다. 퇴촌의 백성들이여, 이제라도 마음을 다잡고 서로를 돌아보자. 그리하면 이 마을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물러남의 품격을 지닌 마을, 그것이 바로 우리의 ‘퇴촌’이다.


더 운문적이거나, 특정 인물의 화법을 따라 각색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원하시면 계속 도와드릴게요.

나의 말:

각색

ChatGPT의 말:

좋습니다. 이번에는 수필 형식을 유지하되, **퇴촌(退村)**을 오래 지켜본 노인 화자의 시선으로 각색해 보겠습니다. 마치 자손에게 말하듯 담담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퇴촌 이야기 – 어느 노인의 말

내가 사는 마을은 ‘퇴촌(退村)’이라 불린다. 이름이 묘하지. 물러날 퇴(退) 자 하나 달랑 앞에 붙었을 뿐인데, 이 마을의 천년 풍경이 거기 다 담겨 있는 것 같아.

어릴 적엔 그 뜻이 뭔지 몰랐지. 왜 마을 이름이 ‘물러남’인지, 그저 좀 촌스럽다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나이가 들고, 세상을 몇 바퀴쯤 돌아보고 나니 그제야 깨닫겠더군. 이 마을은 나아가기보다 물러나는 데서 지혜를 찾았던 곳이야. 억지로 앞서려 하지 않고, 욕심으로 올라서려 하지 않던 사람들. 그게 퇴촌의 선비들이고 농부들이었지.

『주역』에도 그런 말이 있어. “처음에는 미혹하나, 나중에는 얻게 된다.” 물러날 줄 아는 자만이 결국은 얻는 법이라는 뜻이지. 또 정이천 선생은 “욕심이 없으면 윗자리에 서게 된다”고 하셨지. 물러섬이 곧 품위라는 거야.

옛날 이 마을은 꽤 번성했단다. 사방으로 들이 펼쳐지고, 바다가 남쪽에 길게 누워 있고, 강물이 북쪽으로 흐르지. 흙은 살지고, 농사는 잘되고, 사람들도 순하고 부지런했어. 그땐 칠천 호가 넘는 집들이 웃음과 곡식으로 가득했지.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 농사 짓는 사람보다 고개 숙인 사람이 더 많고,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는 끊긴 지 오래야. 예전엔 따뜻한 밥 한 그릇 얻는 일도 어렵지 않았는데, 이젠 양식도 모자라고 마음도 메말랐어. 부자들은 여전히 배불리 먹지만, 대부분은 겨우겨우 입에 풀칠을 하지. 무언가 큰 틈이 생긴 거지.

너도 알겠지만, 조창이 생긴 이후로 이 마을은 점점 힘들어졌어. 해마다 빚지는 이들이 수천 명이야. 쌀을 나라에 바쳐야 하고, 세금에 부역에… 애써 지은 곡식은 금방 빈 자루가 되지. 관리들은 형식만 지키고, 도둑보다 더한 무리가 세금을 거두어 가는 일도 허다했지.

그런데, 다들 말만 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이건 원래 힘든 거다.” 그렇게 핑계만 대고 물러서 있지. 문제는 말이야, 그 핑계가 결국 모두의 입을 통해 굳어져 버렸다는 거야. 누구도 앞서 나서려 하지 않아. 다들 ‘남’이 해 주길 바라는 거지.

하지만 말이야, 지도자라는 게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야. 그냥 우리들 중 한 사람이, 조금 더 마음을 낸 사람일 뿐이야. 나 아니면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내가 조금 먼저 하겠다는 거지.

옛날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절기를 알고, 벌레 한 마리에도 계절을 읽었지. 하늘이 언제 비를 주고, 언제 거두는지 알아야 땅을 다스릴 수 있거든. 그런 마음으로 집안을 다스리고, 마을을 이끌고, 나라를 생각했지.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안에서 살림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해.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고, 제사는 정성껏, 잔치는 절제 있게. 그게 우리 퇴촌의 도리였어. 물러나는 데서 품위를 지키고, 더 가지려 하지 않는 데서 평화를 얻었지.

나는 지금도 믿는다. 퇴촌은 아직 살아 있다고. 우리가 이 이름을 잊지 않고, 그 뜻을 마음에 되새긴다면, 다시 예전처럼, 아니 그보다 더 깊은 마을이 될 수 있다고 말이야.

자네도, 잊지 말게. 이름엔 뜻이 담겨 있고, 뜻엔 길이 있다네. ‘퇴(退)’라 한 자, 그 속에 우리가 살아야 할 방향이 들어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