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가슴 2006. 7. 25. 22:38


창원의 사격장 뒤의 566.7m의 봉림산..

나에게 산과 산행을 가르쳐 준 산이고, 무림의 당당한 한축인 산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 산에 얽힌 이름이야기가 하나 있으니 2003년 10월 25일자 경남신문에 실린 경남대 김정대교수의 토요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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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지나친 공손은 도리어 예가 아니다."(過恭非禮)라는 옛말은, 창원대학교 뒷산의 이름을 '정병산'(精兵山)에서 '봉림산'(鳳林山)으로 바꾼데에도 적용됨직하다. 1995년, 그 해는 우리가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난 지 반세기가 되던 해였다. 그 뜻깊은 해를 맞아 경남에서는, 일제 찌꺼기를 몰아낸다는 뜻에서 일제에 의해 붙여졌다는 혐의가 짙은 몇몇 땅이름을 원래의 우리 것으로 되돌리는 작업이 진행됐었다. 현재의 '봉림산'은 그렇게 해서 새롭게 탄생한(?) 이름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일제때 지어졌을 것"이라는 지나친 공손은, 정병산을 없애고 그 자리에 봉림산을 내세운 비례(非禮)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런 중대한 일은 경상남도 지명위원회, 아니면 적어도 창원시 지명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결정되었을 터인데, 그 당시 지명위원회는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묻고 싶다. 어떻게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지는 생각할수록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정병산의 원래 이름은 '전단산'( 旃檀山 )이었고, 봉림산은 전단산에서 갈라져 나간, 그러니까 지금 창원 컨트리 클럽이 있는 높지 않은 산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는 전통지도나,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을 비롯한 [경상도읍지](1832년 무렵), [영남읍지](1871년)등 전통지리서를 '한 번만이라도' 뒤져 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알수 있는 사실인데도 결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태로 번져간 것이다. 이에 대한 전통 지리서의 기록은 이렇다. "전단산은 부(府)의 동쪽 25리에 있는데 염산(簾山)으로부터 왔다. 봉림산은 부의 남쪽 15리에 있는데 전단산으로부터 왔다." '염산'은 일명 '구룡산'으로, 천주산 북동쪽 지금의 구룡사 뒷산이다. 이렇게 분명한 기록을 두고 전단산(정병산)을 봉림산이라니!

 

봉림산이 전단산(정병산)이 아니라는 두 번째 증거를 대기 전에, 필자의 고향을 소개해 두는 것도 이번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필자는 지금의 창원대학교 본관을 비롯한 인문관 등이 들어서 있는 곳(그곳은 예로부터 '상촌'(上村:웃안골)으로 불렸다.)이 고향이다. 그러니까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전단산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것인데, 우리고향은 '김해김씨 단산공파'(金海金氏 檀山公派) 집성촌이었다. 단산공파의 '단산'은 '전단산'에서 '전'자를 뺀 것이니, 창원대학교 뒷산 이름이 예로부터 전단산이었음을 그 누가 부인하랴! 전통 지리서,지도에서의 명명과 족보상의 명명이 일치하는 이것보다 더 완벽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필자가 어렸을 때는 정병산으로 불렸지 전단산으로는 불리지 않았다는 점도 여기에서 덧붙여 둔다. 그러면 '정병산'은 어떻게 해서 생긴 이름일까? 정병산이 산 이름으로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필자의 조사로는 1932년에 편찬된 [영지요선]( 嶺誌要選 )에서다. 그러나 1930년대의 문헌에 그 이름이 실렸다는 것은 실제로 '정병산'이라는 이름은 그 오래 전부터 지역민들에게 불려지고 있었음을 암시해 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실제로 전단산을 '정병산'으로 묘사한 글은 조선시대 후기에 창작된 한시(漢詩)에 이미 나오고 있다.

 

"層層檀岳出天岡 / 狀若精兵立戰場" (겹겹으로 높은 전단산 하늘을 뚫은 뫼 / 그 모습 마치 정예로운 병사 전쟁터에 선 듯) 이것은 영조 때 인물인 용강 김재정(龍岡 金載鼎) 선생의 한시 첫 구절인데, 전단산의 위용을 정예로운 병사, 즉 '정병'에다 비유한 것이다. 한시 속에 '정병(산)'이 나오는 예는 더 있다.

 

이상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아마도 천 년 이상 불렸을 창원대 뒷산의 전통적인 이름은 '전단산'이었는데, 조선 후기부터 별칭으로 '정병산'으로 불렸던 것이 어느 시점부터 1995년까지는 전단산대신 정병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정병산이 일제 때의 명명일 것으로 잘못 판단한 일부 사람들에 의해, 터무니없게도 '봉림산'으로 갈음하게 된 것이다. 정병산은 일제에 의한 명명이 아니지만, 그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원래 이름인 '전단산'으로 되돌리는게 옳다. 그리고 봉림산은 본래의 봉림산으로 되돌아 가게 해야 한다. 김해 쪽 전통 지리서에서 전단산( 旃檀山 )을 전단산(田丹山)으로 기록하고 있었다는 점도 덧붙여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