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생가
호암 이병철 회장 생가지를 찾아서
나는 의령읍에서 의병대장 곽재우장군을 모신 축익사를 보고, 그 생가가 있는 정곡면을 찾아가다가 뜻하지 않게 호암 이병철 회장의 생가가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속담에 "한 나라의 왕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 하늘이 낸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 늘 왕(대통령)뿐만아니라 삼성과 현대의 창업주이신 이병철회장과 정주영회장 같은 재벌 역시 하늘이 내신 분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어찌 그 정보를 접하고 그냥 이곳을 지나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선친이 꽤나 이름난 지관이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 풍수지리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래서 양택, 음택에 대하여 보통 사람들 보다는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있는편이기 때문에 호암의 생가를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호암 이병철회장은 만고풍상을 겪으며 당대 국내 최고의 재벌이 되었고,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는 대기업을 이룩해 놓았다. 더불어 잘 살자는 철학의 기초를 세워 국내 유수한 기업 중 유일하게 노조가 없는 기업을 만들고, 세계가 놀라는 삼성신화를 창조하였다. 나는 그 꿈의 태동지를 방문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정곡면 소재지 초엽에 서 있는 이정표
의령에서 정곡면을 향해 달리다 약 9km지점에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는 중앙에 장승 두 개가 서있고 왼쪽에는 서경보스님이 세운 일붕사로 들어가고, 오른쪽엔 백계관광지로 들어가는 안내표지판이
서 있다.
호암 이병철 생가 안내 표지판
벽계괸광지 표지판 맨 아래에 '호암 이병철 생가'란 글씨가 보인다.
여기에는 호암 생가까지의 거리 표시가 없는데, 대략 7, 800m쯤
되어 보인다.
동네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위의 이정표를 따라 들어오면 왼쪽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호암생가로 ㄷ들어가는 안내판이 서 있다.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가야 한다.
평범한 시골동네
동네 입구에서 이병철회장 생가에 이르는 길은 다른 시골동네와 전혀 다른바 없다. 한국 제일의 거부가 탄생한 고향이어서 특별히 정비가 됐을 것으로 내심 기대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의외라는 스낌을 받았다.
생가가 있는 장내마을
시장이 서는 안동네라고 해서 장내마을 인가! 여한튼 동네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느티나무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아래에도 역시 '호암 이병철 생가'라고 쓴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이병철 회장이 결혼한 후 살던 집
느티나무가 있는 곳으로부터 80여m 더 들어가니 왼쪽에 커다란 기와 집이 보였다. 지나가는 동네사람에게 물으니 이 집은 이병철회장이 결혼한 후에 살던 집이라고 했다. 지금은 이병철회장의 장남 이명희씨가 가끔 다녀가고, 이건희 회장은 전혀 이곳에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이병철회장 생가로 들어가는 골목길
이 길은 따라 들어가다 왼쪽 집의 담벽이 거의 끝나는 지점 오른쪽에 이병철회장의 생가가 있다. 그 주위에는 기와집이 서 너 채가 있다.
이병철 회장 생가 솟을대문
대문은 언제 옛날 탄생 당시의 것이 아니라 새로 세워 깨끗하게 보였다. 주위를 둘러 보아도 언제 중건햇다는 안내표지판은 보이지 않았다. 문이 굳게 잠겨 지나가는 동네 어른에게 물으니 "앞의 큰 기와집과 이 집을 관리 하는 관리인이 있는데 아마 출타한 것 같다."고 하며 "사람이 없으면 왼쪽 옆의
조그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부를 볼 수 있다."고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대문을 통과하여 바라 본 사랑채 전경
사랑채는 4칸짜리 일자형 기와집이었고, 오른쪽에는 화단이 있고, 암페는 넓은 잔디 마당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마당에서 뒤 돌아본 대문.
대문 옆에 향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잔디 마당 한 가운데 있는 우물
가까운 데서 본 사랑채
사랑채 기둥에는 완당(추사) 김정희 외 2인이 쓴 글씨를 새긴 주련 여섯 개가 보기 좋게 걸려 있고 3개
의 방이 있다. 주련이 걸린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得句會應緣竹鶴 (득구회응연죽학): 좋은 시 구절을 얻으려면 대나무와 학을 만나는 인연이 있어야하고
著書不暇窺園葵 (저서불가규원규): 저술을 하느라고 정원의 해바라기 바라 볼 여가가 없다.
搜羅金石卑歐趙 (수라금석비구조): 오래된 금석문을 찾으니 당(唐)의 구양순(歐陽詢)과
원(元)의 조맹부(趙孟?)의 글씨를 수준 낮게 보고
看領風騷피杜韓 (간령풍소피두한}: 중국 고전의 시가집인 시경과 이소의 글을 보면서
당의 문장가인 두보(杜甫)와 한유(韓愈)의 글을 물리친다네.
秋水爲神玉爲骨 (추수위신옥위골): 맑은 가을 물을 정신으로, 옥을 뼈로 삼으며
詞源如海筆如椽 (사원여해필여연): 문장은 바다처럼 넓고 글씨는 서까래처럼 웅장하다.
사랑채 오른쪽에 있는 화단.
안채
사랑채 오른쪽 화단을 끼고 안으로 들어가니 안채가 보였다. 안채 오른쪽에는 커다란 단풍나무가 한그루 서 있었다.
안채와 부엌 앞의 우물
안채 왼쪽에 서 있는 향나무
안채와 사랑채 옆 담 밑에 있는 화단
의령에서 정곡면 방향으로 10.1km지점
동네 입구의 안내표지판을 따라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