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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곡박신윤
자라가슴
2009. 5. 28. 14:27
1661년(현종 2)∼1698년(숙종 24).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경(德卿)
, 호는 우곡(愚谷)
.
증조부는 선무공신 부호군
박홍정(朴弘貞)이고, 조부는 박익(朴益)이다. 아버지는 박이경(朴而慶)이며, 어머니는 달성서씨(達城徐氏)로 서준(徐濬)의 딸이다. 12세에 부친을 여의었는데, 예제에 따라 효성이 지극하여 홀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였고, 13세에 친상을 당해서도 예제를 다하였다.
이시장(李是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뒤에 김상정(金尙鼎)과 함께 항재(恒齋)
이숭일(李嵩逸)
의 문인이 되었다. 항재
사후에는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
을 유배지와 안동으로 찾아가 몇 달씩 머무르며 문안을 드리고 동문들과 강론하였다. 모친의 뜻을 받들어 향시와 초시에 여러 번 합격하였으나 서른 살이 지나서는 과거에 대한 뜻을 접고 학문과 후진양성에 힘썼다. 38세에 요절하였으나 문명과 덕행이 널리 알려져서, 1702년(숙종 28)에 호조좌랑
에 추증되고, 세거지인 창원(昌原)의 사화리(沙火里)에 향현사(鄕賢祠)가 창건되어 이곳에 향사되었다. 이 사우는 1844년(헌종 10)에 운암서원(雲巖書院)으로 승격되었다. 1891년(고종 28) 5대손 박기환(朴琪煥)에 의하여 시문집 《우곡문집(愚谷文集)》 4권 2책이 간행되었다.


증조부는 선무공신 부호군

이시장(李是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뒤에 김상정(金尙鼎)과 함께 항재(恒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