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영남학파 학맥도
李滉 (1501~1570)
이황(李滉 ; 1501∼1570).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陶馬). 경상도 예안현(禮安縣) 온계리(溫溪里 :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좌찬성 식(埴)의 7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7개월에 아버지의 상(喪)을 당했으나, 현부인이었던 생모 박씨의 훈도 밑에서 총명한 자질을 키워 갔다.
12세에 작은아버지 우(屛)로부터 ≪논어≫를 배웠고, 14세 경부터 혼자 독서하기를 좋아해, 특히 도잠(陶潛)의 시를 사랑하고 그 사람됨을 흠모하였다. 18세에 지은 〈야당 野塘〉이라는 시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20세를 전후하여 ≪주역≫ 공부에 몰두한 탓에 건강을 해쳐서 그 뒤부터 다병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한다.
27세(1527)에 향시(鄕試)에서 진사시와 생원시 초시에 합격하고, 어머니의 소원에 따라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성균관에 들어가 다음해에 진사 회시에 급제하였다. 33세에 재차 성균관에 들어가 김인후(金麟厚)와 교유하고 ≪심경부주 心經附註≫를 입수, 크게 심취하였다.
이 해 귀향 도중 김안국(金安國)을 만나 성인군자에 관한 견문을 넓혔다. 34세(1534)에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 부정자(副正字)가 되면서 관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37세에 어머니 상을 당하자 향리에서 3년 간 복상했고, 39세에 홍문관수찬이 되었다가 곧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임명되었다.
중종 말년에 조정이 어지러워지매 먼저 낙향하는 친우 김인후를 한양에서 떠나 보냈다. 이 무렵부터 관계를 떠나 산림에 은퇴할 결의를 굳힌 듯, 43세이던 10월에 성균관사성으로 승진하자 성묘를 핑계삼아 사가를 청해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을사사화 후 병약함을 구실로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46세(1546)가 되던 해 고향인 낙동강 상류 토계(兎溪)의 동암(東巖)에 양진암(養眞庵)을 얽어서 산운야학(山雲野鶴)을 벗삼아 독서에 전념하는 구도 생활에 들어갔다. 이 때에 토계를 퇴계(退溪)라 개칭하고,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
그 뒤에도 자주 임관의 명을 받아 영영 퇴거(退居)해 버릴 형편이 아님을 알고 부패하고 문란한 중앙의 관계에서 떠나고 싶어서 외직을 지망, 48세에 충청도 단양군수가 되었다. 그러나 곧 형이 충청감사가 되어 옴을 피해 봉임 전에 청해서 경상도 풍기군수로 전임하였다.
풍기군수 재임중 주자가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부흥한 선례를 좇아서, 고려 말기 주자학의 선구자 안향(安珦)이 공부하던 땅에 전임 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창설한 백운동서원에 편액(扁額)·서적(書籍)·학전(學田)을 하사할 것을 감사를 통해 조정에 청원, 실현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조선조 사액 서원(賜額書院)의 시초가 된 소수서원(紹修書院)이다. 1년 후 퇴임하고, 어지러운 정계를 피해 퇴계의 서쪽에 한서암(寒棲庵)을 지어 다시금 구도 생활에 침잠하다가 52세(1552)에 성균관대사성의 명을 받아 취임하였다. 56세에 홍문관부제학, 58세에 공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여러 차례 고사하였다.
43세 이후 이 때까지 관직을 사퇴하였거나 임관에 응하지 않은 일이 20여 회에 이르렀다. 60세(1560)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아호를 ‘도옹(陶翁)’이라 정했다. 이로부터 7년 간 서당에 기거하면서 독서·수양·저술에 전념하는 한편, 많은 제자들을 훈도하였다.
명종은 예(禮)를 두터이 해 자주 그에게 출사(出仕)를 종용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이에 명종은 근신들과 함께 ‘초현부지탄(招賢不至嘆)’이라는 제목의 시를 짓고, 몰래 화공을 도산에 보내 그 풍경을 그리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에다 송인(宋寅)으로 하여금 도산기(陶山記) 및 도산잡영(陶山雜詠)을 써넣게 해 병풍을 만들어서, 그것을 통해 조석으로 이황을 흠모했다 한다. 그 뒤 친정(親政)하게 되자, 이황을 자헌대부(資憲大夫)·공조판서·대제학이라는 현직(顯職)에 임명, 자주 초빙했으나, 그는 그때마다 고사하고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67세 때 명나라 신제(新帝)의 사절이 오게 되매, 조정에서 이황의 내경(來京)을 간절히 바라 어쩔 수 없이 한양으로 갔다. 명종이 돌연 죽고 선조가 즉위해 그를 부왕의 행장수찬청당상경(行狀修撰廳堂上卿) 및 예조판서에 임명하였다. 하지만 신병 때문에 부득이 귀향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황의 성망(聲望)은 조야에 높아, 선조는 그를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우찬성에 임명, 간절히 초빙하였다. 그는 사퇴했지만 여러 차례의 돈독한 소명을 물리치기 어려워 마침내 68세의 노령에 대제학·지경연(知經筵)의 중임을 맡고, 선조에게 〈무진육조소 戊辰六條疏〉를 올렸다.
선조는 이 소를 천고의 격언, 당금의 급무로서 한 순간도 잊지 않을 것을 맹약했다 한다. 그 뒤 이황은 선조에게 정이(程蓬)의 〈사잠 四箴〉, ≪논어집주≫·≪주역≫, 장재(張載)의 〈서명 西銘〉 등의 온오(蘊奧)를 진강하였다.
노환 때문에 여러 차례 사직을 청원하면서 왕에 대한 마지막 봉사로서 필생의 심혈을 기울여 ≪성학십도 聖學十圖≫를 저술, 어린 국왕 선조에게 바쳤다. 이듬해 69세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번번히 환고향(還故鄕)을 간청해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환향 후 학구(學究)에 전심하였으나, 다음해 70세가 되던 11월 종가의 시제 때 무리를 해서인지 우환이 악화되었다. 그 달 8일 아침, 평소에 사랑하던 매화분에 물을 주게 하고, 침상을 정돈시킨 후, 일으켜 달라 해 단정히 앉은 자세로 역책(易愁 : 학덕이 높은 사람의 죽음)하였다.
선조는 3일간 정사를 폐하여 애도하고,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 겸 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영사를 추증하였다. 장사는 영의정의 예에 의하여 집행되었으나, 산소에는 유계(遺誡)대로 소자연석에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 새긴 묘비만 세워졌다.
죽은 지 4년 만에 고향 사람들이 도산서당 뒤에 서원을 짓기 시작해 이듬해 낙성, 도산서원의 사액을 받았다. 그 이듬해 2월에 위패를 모셨고, 11월에는 문순(文純)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 이 황 >>
금난수 (1530~1604)
금개 (1552~1629) 금경과 동일
금업 (1557~1638) 금경과 동일
금경 (1553~1634)
금성규 (1636~1700)
금성휘 (1622~1682)
금서술 (1791~1872)
금시술 (1783~1851)
김전 (1538~1575) 김부인과 동일
김부륜 (1531~1598) 김부인과 동일
김부의 (1525~1582) 김부인과 동일
김부신 (1523~1566) 김부인과 동일
김부필 (1516~1577) 김부인과 동일
김기 (1547~1603) 김부인과 동일
김부인 (1512~1584)
김령 (1577~1641) 김해과 동일
김해 (1555~1593)
김확 (1583~1665) 김광계과 동일
김광악 (1591~1648) 김광계과 동일
김광계 (1580~1646)
김렴 (1612~1635)
김순의 (1645~1714) 김용과 동일
김총 (1633~1678) 김용과 동일
김화 (1644~1718) 김용과 동일
김용 (1657~1732)
김동준 (1685~1732)
김시찬 (1754~1831)
김기동 (1874~1930)
김종구 (1891~1974)
권대기 (1523~1587)
권우 (1552~1590)
권상일 (1697~1788)
조보양 (1709~1788)
조석철 (1724~1799)
조석회 (1727~1802)
권환 (1580~1652)
권굉 (1575~1652)
권우 (1552~1590)
금응협 (1526~1586)
금응훈 (1540~1616)
김언기 (1520~1588)
권강 (1567~1626)
박중윤 (1562~1637)
권위 (1552~1616)
박의장 (1555~1615)
김득의 (1570~1625) 김득연과 동일
김득연 (1555~1637)
김도명 (1803~1873)
김도혁 (1794~1839)
권춘란 (1539~1617)
남치리 (1534~1580)
신지제 (1562~1624)
조목 (1524~1606)
권익창 (1562~1645)
김택룡 (1547~1627)
권위 (1552~1630)
정윤해 (1553~1618)
이순도 (1554~1584)
김해 (1555~1593)
배용길 (1556~1609)
금경 (1553~1634)
금업 (1557~1638)
임흘 (1557~1620)
이영도 (1559~1637)
조우인 (1561~1625)
금개 (1552~1629)
유종개 (1558~1592)
이광윤 (1564~1637)
김중청 (1567~1629)
신달도 (1576~1631)
구봉령 (1526~1586)
권춘란 (1539~1617)
김윤안 (1562~1620)
권태일 (1569~1631)
정사신 (1558~1619)
정칙 (1601~1663)
정사성 (1545~1607)
오수영 (1521~1606)
오운 (1540~1617)
오여벌 (1579~1635)
박승임 (1517~1586)
김륵 (1540~1616)
배응경 (1544~1602)
김중청 (1567~1629)
김주우 (1598~1644)
금복고 (1549~1631)
임흘 (1557~1620)
김윤안 (1562~1620)
박회무 (1575~1666) 박종무과 동일
박중윤 (1562~1637) 박종무과 동일
박종무 (1582~1664)
박정 (1590~1653)
박시원 (1764~1842)
박종후 (1792~1864)
박면중 (1777~1845) 박종희과 동일
박종희 (1795~1862)
박성양 (1890~1960)
이숙량 (1519~1592) 이원승과 동일
이덕홍 (1541~1596) 이원승과 동일
이원승 (1518~1572)
오흡 (1576~1641)
김만휴 (1625~1694)
이점 (1579~1627) 이시과 동일
이시 (1569~1636)
이영전 (1601~1678)
이상흡 (1735~1791)
이시양 (1770~1860)
이규현 (1808~1862)
이대연 (1841~1906) 이세강과 동일
이긍연 (1842~1907) 이세강과 동일
이세강 (1846~1917)
이용구 (1910~1998)
금보 (1521~1585)
손영제 (1521~1585)
이형남 (1556~1627) 이완과 동일
이정백 (1553~1600) 이완과 동일
이봉춘 (1542~1625) 이완과 동일
이정회 (1542~1613) 이완과 동일
이안도 (1541~1584) 이완과 동일
이영도 (1559~1637) 이완과 동일
이완 (1512~1596)
이돈 (1568~1624) 이회보과 동일
이이송 (1598~1665) 이회보과 동일
이회보 (1594~1669)
이긍 (1618~1687) 이명익과 동일
이보 (1629~1710) 이명익과 동일
이명익 (1617~1687)
이동표 (1644~1700)
이제겸 (1683~1743) 이수연과 동일
이세사 (1694~1754) 이수연과 동일
이집 (1672~1747) 이수연과 동일
이세태 (1698~1760) 이수연과 동일
이수연 (1693~1748)
이중연 (1711~1794) 이중광과 동일
이수정 (1709~1795) 이중광과 동일
이중광 (1709~1778)
이급 (1721~1790)
이귀응 (1729~1789) 이종수과 동일
이세윤 (1730~1798) 이종수과 동일
이종수 (1722~1797)
이지순 (1762~1807) 이야순과 동일
이태순 (1759~1840) 이야순과 동일
이이순 (1754~1832) 이야순과 동일
이야순(1755~1831)
이휘녕 (1788~1861) 이휘재과 동일
이휘재 75)
이운호 (1852~1930) 이긍연과 동일
이중두 (1836~1914) 이긍연과 동일
이만인 (1834~1897) 이긍연과 동일
이만규 (1845~1920) 이긍연과 동일
이만도 (1842~1910) 이긍연과 동일
이만각 (1815~1874) 이긍연과 동일
이긍연
이중업 (1863~1921)
이탁 (1890~1972)
이중철 (1848~1934)
이중균 (1861~1933)
이충호 (1872~1951)
이한걸 (1880~1951)
이원기 (1896~1942)
이세택 (1716~1777)
이상흡 (1735~1791)
유중영 (1515~1573)
유운룡 (1539~1601)
정탁 (1526~1605)
황섬 (1544~1616)
정윤해 (1553~1618)
정윤목 (1571~1629)
유성룡 (1542~1607)
김윤안 (1562~1620)
김여만 (1625~1711)
김응조 (1587~1667)
김정 (1670~1737) 김건과 동일
김간 (1653~1735) 김건과 동일
김건 (1648~1701)
김두흠 (1804~1877)
이이송 (1598~1665)
이희무 (1617~1683)
김계광 (1621~1675)
김빈 (1621~1694)
김하정 (1621~1677)
김만휴 (1625~1694)
권적 (1626~1679)
이보 (1629~1710)
전식 (1563~1642)
김치관 (1569~1661)
정윤목 (1571~1629)
김봉조 (1572~1630)
김연조 (1585~1613)
정경세 (1563~1633)
유진 (1582~1635)
김응조 (1587~1667)
박회무 (1575~1666)
여효주 (1608~1654)
전이성 (1577~1645)
정영방 (1577~1650)
홍호 (1586~1646)
김건 (1648~1701)
전극항 (1590~1636)
남급 (1592~1671)
신석번 (1596~1675)
김종일 (1597~1675)
유원지 (1598~1678)
권징 (1636~1698)
권구 (1672~1749)
신석형 (1605~1660)
정도응 (1618~1667)
박손경 (1713~1782)
정종로 (1738~1816)
문정유 (1761~1839)
강세규 (1762~1833)
이원조 (1792~1872)
박시묵 (1814~1879)
이진상 (1818~1886)
허유 (1833~1904)
김진호 (1845~1908)
윤주하 (1846~1906)
곽종석 (1846~1919)
하용제 (1854~1919)
정돈균 (1855~1941)
하헌진 (1859~1926)
이병희 (1859~1938)
서병오 (1862~1935)
김성하 (1863~1909)
송호곤 (1865~1929)
하봉수 (1867~1939)
하계락 (1868~1933)
조용상 (1870~1930)
이후 (1870~1934)
이병헌 (1870~1940)
하겸진 (1870~1946)
정돈섭 (1870~1947)
성환보 (1870~1947)
송상도 (1871~1946)
박헌수 (1872~1955)
조긍섭 (1873~1933)
권상규 (1874~1961)
박세환 (1874~1966)
하경규 (1878~1941)
권도용 (1878~1959)
김창숙 (1879~1962)
정종화 (1881~1938)
노근용 (1884~1965)
하정근 (1889~1973)
김학수 (1891~1974)
하우선 (1894~1975)
김황 (1896~1978)
이승희 (1847~1916)
이도추 (1847~1922)
조원순 (1850~1903)
박규호 (1850~1930)
장석영
이종익 (1886~1951)
이기윤 (1891~1971)
이규진 (1763~1822)
신정주 (1764~1827)
박광석 (1764~1845)
허강 (1766~1822)
손윤구 (1766~1837)
황번로 (1766~1840)
조언유 (1767~1847)
정상진 (1770~1847)
정상리 (1774~1848)
김양정 (1785~1847)
최효술 (1786~1870)
조상덕 (1808~1870)
이종상 (1799~1870)
류심춘 (1762~1834)
유후조 (1798~1876)
김재찬 (1811~1888)
유주목 (1813~1872)
이긍연 (1842~1907)
이세강 (1846~1917)
홍지수 (1835~1897)
허훈 (1836~1907)
조승기 (1836~1913)
노근수 (1845~1912)
안창렬 (1847~1925)
유도수 (1820~1889)
유도성 (1823~1910)
유도발 (1832~1910)
유도헌 (1835~1909)
유흠목 (1843~1910)
유응목 (1841~1921)
김도명 (1803~1873)
윤동야 (1757~1827)
남한호 (1760~1821)
전익희 (1598~1659)
김해 (1555~1593)
신달도 (1576~1631)
배용길 (1556~1609)
장흥효 (1564~1633)
권강 (1567~1626)
김득연 (1555~1637)
김홍미 (1557~1604)
권희인 (1558~1593)
김령 (1577~1641)
이전 (1558~1648)
이준 (1560~1635)
박종무 (1582~1664)
전극항 (1590~1636)
노경임 (1569~1620)
김휴 (1597~1638)
김시추 (1580~1640)
유진 (1582~1635)
유원지 (1598~1678)
유백지 (1629~1684)
유의하 (1616~1698)
유후장 (1650~1706)
유성화 (1668~1748)
유규 (1730~1806)
유상조 (1763~1838) 유치목과 동일
유이좌 (1763~1837) 유치목과 동일
유치목 (1771~1836)
유광목 (1813~)
유도휘 (1826~1897)
유지영 (1828~1896)
유종춘 (1720~1795)
유례 (1702~1772)
이집 (1672~1747)
유세철 (1627~1681)
유세명 (1636~1690)
권태시 (1635~1719)
유천지 (1616~1689)
정도응 (1618~1667)
손만웅 (1643~1712)
박사희 (1508~1588)
권문해 (1534~1591)
변영청 (1516~1580)
변중일 (1575~1660)
김극일 (1522~1585)
이순도 (1554~1584)
김수일 (1528~1583)
김팔원 (1524~1589)
김사원 (1539~1602)
김택룡 (1547~1627)
김명일 (1534~1570)
권동보 (1518~1592) 권동미과 동일
권동미 (1525~1585)
권채 (1557~1599) 권래과 동일
권래 (1562~1617)
권두인 (1643~1719) 권두기과 동일
권두경 (1654~1725) 권두기과 동일
권두기 (1659~1722)
권만 (1688~1749) 권모과 동일
권보 (1681~1715) 권모과 동일
권모 (1690~1751)
권정택 (1706~1765) 권정침과 동일
권정웅 (1708~1767) 권정침과 동일
권정침 (1710~1767)
권재대 (1778~1859) 권재성과 동일
권재성 (1778~1838)
권세연 (1836~1899) 권행하과 동일
권중연 (1830~1883) 권행하과 동일
권연하 (1813~1896) 권행하과 동일
권행하 (1815~1855)
권상익 (1863~1935) 권상규과 동일
권상규 (1874~1961)
권명섭 (1885~1949)
권응인 (1517~)
권호문 (1532~1587)
권기 (1546~1624)
신의립 (1565~1631)
권행가 (1553~1623)
권덕수 (1672~1759)
권석규 (1689~1754)
권심규 (1706~1779)
배용길 (1556~1609)
김성일 (1538~1593)
유복립 (1558~1593) 유복기과 동일
유복기 (1555~1617)
유정휘 (1625~1695) 유직과 동일
유지 (1626~1701) 유직과 동일
유직 (1602~1662)
유승현 (1680~1746)
유정원 (1703~1761)
유범휴 (1744~1823) 유도원과 동일
유장원 (1724~1796) 유도원과 동일
유도원 (1721~1791)
유건휴 (1768~1834)
유정문 (1782~1839)
유휘문 (1773~1827)
유치명 (1777~1861)
유필영 (1841~1924) 유치호과 동일
유정호 (1837~1907) 유치호과 동일
유기호 (1823~1886) 유치호과 동일
유긍호 (1819~1876) 유치호과 동일
유치임 (1805~1876) 유치호과 동일
유치호 (1800~1845)
유연즙 (1853~1933)
유창식 (1858~1912)
유연구 (1861~1938)
유인식 (1865~1928)
유경시 (1666~1737)
유관현 (1692~1764)
김용 (1557~1620)
김시주 (1575~1617) 김시추과 동일
김휴 (1597~1638) 김시추과 동일
김시온 (1598~1669) 김시추과 동일
김시추 (1580~1640)
남몽뢰 (1620~1681)
김방걸 (1623~1695)
김학배 (1628~1673)
김세흠 (1649~1721)
김창석 (1652~1720)
김태중 (1649~1711)
김명석 (1675~1762)
김성탁 (1684~1747)
김순석 (1682~1717)
김우한 (1705~1783)
김낙행 (1708~1766)
김성흠 (1682~1757)
김용보 (1722~1787)
김강한 (1719~1779)
김붕운 (1755~1812)
김익명 (1708~1775)
김정한 (1711~1766)
김도행 (1728~1812)
김양운 (1764~1824) 김붕운과 동일
김호운 (1768~1811) 김붕운과 동일
김회운 (1764~1834) 김붕운과 동일
김붕운 (1755~1812)
김형수 (1778~1857) 김대진과 동일
김양진 (1829~1901) 김대진과 동일
김헌락 (1826~1877) 김대진과 동일
김흥락 (1827~1899) 김대진과 동일
김건수 (1804~1866) 김대진과 동일
김진성 (1843~1918) 김대진과 동일
김진명 (1813~1872) 김대진과 동일
김대진871)
김형모 (1856~1930)
김시락 (1858~1896) 김상수과 동일
김상수
김병구 (1876~1950)
김경락 (1834~1912)
김대락 (1845~1914)
김동삼 (1878~1937)
김한락 (1858~1945)
안경직 (1721~1787)
김광련 (1727~1809)
김빈 (1621~1694)
김임 (1604~1667)
배유화 (1611~1673)
배유장 (1618~1687)
김근 (1579~1656)
권위 (1552~1616)
김해 (1555~1593)
조정 (1555~1636)
배용길 (1556~1609)
임흘 (1557~1620)
이개립 (1546~1625)
이달의 (1616~1705)
이적의 (1652~1725)
황여일 (1556~1622)
신지제 (1562~1624)
김종일 (1597~1675)
최현 (1563~1640)
김영조 (1577~1648)
권익창 (1562~1645)
박정 (1590~1653)
권행가 (1553~1623)
장흥효 (1564~1633)
이시명 (1590~1674)
이상일 (1611~1678)
이휘일 (1619~1672)
이현일 (1627~1704)
정규양 (1667~1732) 정만양과 동일
정만양 (1664~1730)
정간 (1692~1757)
정욱 (1709~1770)
이홍리 (1701~1778)
안경열 (1712~1779)
유경시 (1666~1737)
유승현 (1680~1746)
유관현 (1692~1764)
이협 (1663~1747)
황수일 (1666~1725)
배면 (1651~1718)
손만웅 (1643~1712)
권두인 (1643~1719)
권덕수 (1672~1759)
배정휘 (1645~1709)
이덕현 (1648~1707)
김태중 (1649~1711)
김세흠 (1649~1721)
조덕린 (1658~1737)
김명흠 (1696~1773)
조술도 (1729~1803) 조운도과 동일
조진도 (1724~1788) 조운도과 동일
조운도 (1718~1796)
조언유 (1767~1847)
조승기 (1836~1913)
조성복 (1772~1830)
이완 (1650~1732)
김창석 (1652~1720)
이형상 (1653~1733)
권두경 (1654~1725)
정옥 (1694~1760)
나학천 (1658~1731)
이만부 (1664~1732)
이승연 (1720~1806)
이병연 (1726~1762)
이경유 (1750~1821)
조천경 (1695~1776)
권두기 (1659~1722)
권대림 (1659~1723)
김여건 (1660~1697)
조선장 (1661~1726)
안련석 (1662~1730)
권구 (1672~1749)
권치 (1693~1766) 권진과 동일
권혜 (1693~) 권진과 동일
권서 (1698~1780) 권진과 동일
권집 (1704~1763) 권진과 동일
권진 (1697~1778)
권명우 (1722~1795) 권상우과 동일
권상우 (1726~1792)
권익 (1821~1876)
권준희 (1849~1936)
이상진 (1710~1772)
이광정 (1674~1756)
권만 (1688~1749)
권정웅 (1708~1767)
이중연 (1711~1794)
조의양 (1719~1808)
김명석 (1675~1762)
김성탁 (1684~1747)
이영 (1611~1678)
이용 (1648~1693)
이만 (1669~1734)
이재 (1657~1730)
김순석 (1682~1717)
이수연 (1693~1748)
김우한 (1705~1783)
권정택 (1706~1765)
김익명 (1708~1775)
이상정 (1711~1781)
유장원 (1724~1796)
유건휴 (1768~1834)
박종희 (1795~1862)
유정문 (1782~1839)
유휘문 (1773~1827)
유치명 (1777~1861)
김회운 (1764~1834)
정충필 (1725~1789)
정동필 (1740~1820)
이동주 (~)
유도원 (1721~1791)
김용보 (1722~1787)
최주진 (1724~1763)
권위 (1762~1835)
배상열 (1759~1789)
김진동 (1727~1800)
조술도 (1729~1803)
유태춘 (1729~1814)
신체인 (1731~1812)
김종경 (1732~1785)
김종덕 (1724~1797)
김경진 (1752~1794)
김천진 (1759~1841)
정박 (1734~1796)
이종주 (1753~1818)
조우각 (1754~1821)
이야순 (1755~1831)
금시술 (1783~1851)
금서술 (1791~1872)
황학 (1758~1804)
남한호 (1760~1821)
정필규 (1760~1831)
이휘재 (1795~1875)
이대연 (1841~1906)
김도혁 (1794~1839)
서활 (1761~1838)
유숭조 (1764~1817)
이병운 (1766~1841)
신면주 (1768~1845)
이병원 (1774~1840)
정종로 (1738~1816)
김굉 (1739~1816)
김종발 (1740~1811)
손성악 (1741~1813)
김종섭 (1743~1791)
이정국 (1743~1807)
김경진 (1752~1794)
권방 (1740~1808)
권규도 (1782~1852)
황용한 (1744~1818)
이주정 (1750~1818)
홍택하 (1753~1820)
남한조 (1744~1809)
조승수 (1760~1830)
강엄 (1766~1833)
유휘문 (1773~1827)
김양휴 (1777~1854)
유치명 (1777~1861)
권연하 (1813~1862)
황기도 (1849~1895)
이만규 (1845~1920)
이만도 (1842~1910)
김도현 (1852~1914)
이중균 (1861~1933)
김호직 (1874~1953)
이탁 (1890~1972)
김경락 (1834~1912)
유치호 (1800~1845)
유치임 (1805~1876)
유치엄 (1810~1876)
유긍호 (1819~1876)
유지호 (1825~1904)
유기호 (1823~1886)
유정호 (1837~1907)
유필영 (1841~1924)
박치복 (1824~1894)
김진호 (1845~1908)
조호래 (1854~1920)
김형칠 (1874~1959)
박종후 (1792~1864)
김진화 (1793~1850)
남공수 (1793~1875)
김대진 (1800~1871)
김건수 (1804~1866)
김우수 (1804~1874)
배선원 (1806~1880)
남고 (1807~1879)
이돈우 (1807~1884)
김노선 (1811~1886)
박시묵 (1814~1879)
김홍락 (1817~1869)
김철수 (1822~1887)
김도화 (1825~1912)
김헌락 (1826~1877)
김흥락 (1827~1899)
변두건 (1853~1941)
변규건 (1838~)
이긍연 (1847~1925)
김상종 (1847~1909)
이중철 (1848~1934)
권상현 (1851~1929)
유연즙 (1853~1933)
유창식 (1858~1912)
이상룡 (1858~1932)
유연구 (1861~1938)
이중업 (1863~1921)
권상익 (1863~1935)
김동진 (1866~1952)
백중각 (1867~1936)
송준필 (1869~1943)
박재헌 (1875~1926)
송기식 (1878~1949)
김대락 (1845~1914)
김시락 (1858~1896)
김형모 (1856~1930)
김홍락 (1863~1943)
김동삼 (1878~1937)
김병종 (1871~1931)
김인섭 (1827~1903)
김양진 (1829~1901)
김한락 (1858~1945)
권병섭 (1854~1939)
송형 (1830~1881)
황재영 (1835~1898)
권세연 (1836~1899)
이종기 (1837~1902)
장지순 (1875~1962)
문영박 (1880~1931)
노근용 (1884~1965)
서효원 (1839~1897)
김진명 (1813~1872)
김진성 (1843~1918)
김희소 (1758~1837)
김희주 (1760~1830)
김희락 (1672~1759)
이현정 (1721~1789)
이우 (1739~1811)
최벽 (1762~1813)
유범휴 (1744~1823)
박면중 (1777~1845)
이종수 (1722~1797)
이가순 (1768~1844)
이광정 (1714~1789)
권심규 (1706~1779)
김성흠 (1682~1757)
권순경 (1676~1744)
김낙행 (1708~1766)
김도행 (1728~1812)
조술도 (1729~1803)
신체인 (1731~1812)
이만운 (1736~1820)
이유원 (1695~1773) 이언환과 동일
이태환 (1697~1774) 이언환과 동일
이복환 (1692~1727) 이언환과 동일
이언환 (1678~1748)
이주원 (1724~1796) 이인훈과 동일
이두원 (1721~1782) 이인훈과 동일
이우육 (1721~1790) 이인훈과 동일
이인훈 (1713~1747)
이수영 (1809~1892) 이수악과 동일
이수암 (1844~1924) 이수악과 동일
이수악 (1845~1927)
이겸호 (1895~1942)
이현규 (1874~1917)
이숭일 (1631~1698)
정곤수 (1538~1602)
권춘란 (1539~1617)
권태일 (1569~1631)
권굉 (1575~1652)
김복일 (1541~1591)
정유일 (1533~1576)
정구 (1543~1620)
김주 (1564~1636)
조정 (1555~1636) 조익과 동일
조익 (1556~1613)
조원윤 (1633~1688)
조천경 (1695~1776)
조승수 (1760~1830) 조목수과 동일
조목수 (1736~1807)
조상덕 (1808~1870)
정윤해 (1553~1618)
문위 (1554~1634)
정윤목 (1571~1629)
정온 (1569~1641)
전이성 (1577~1645)
이도장 (1607~1677)
박성 (1549~1606)
김광계 (1580~1646)
김광악 (1591~1648)
손처눌 (1553~1634)
서사원 (1550~1615)
박종우 (1587~1654)
도신수 (1598~1650)
이도자 (1559~1642)
이후경 (1558~1620)
황중윤 (1557~1648)
이천배 (1558~1604)
최항경 (1560~1638)
성안의 (1561~1629)
성이성 (1595~1664)
성문하 (1638~1726)
김수인 (1563~1626)
이명호 (1565~1624)
이돈 (1568~1624)
이윤우 (1569~1634)
이시 (1569~1636)
이민성 (1570~1629)
강재산 (1573~1636)
배상룡 (1574~1655)
신적도 (1574~1663)
박회무 (1575~1666)
오여벌 (1579~1635)
이점 (1579~1627)
권환 (1580~1652)
김광계 (1580~1646)
배상익 (1581~1631)
박종무 (1582~1664)
이모 (1582~1639)
권수경 (1584~1659)
최동집 (1586~1661)
최흥원 (1705~1786)
최주진 (1724~1763)
최효술 (1786~1870)
조덕신 (1722~1791)
정희 (1723~1793)
정충필 (1725~1789)
남석로 (1729~1774)
손상룡 (1731~1791)
이동항 (1736~1804)
최흥립 (1736~1809)
이동급 (1738~1811)
정동필 (1740~1820)
이희발 (1768~1849)
이지재 (1805~1872)
조택규 (1745~1820)
김천진 (1759~1841)
정종로 (1738~1816)
이정국 (1743~1807)
홍택하 (1753~1820)
윤동야 (1757~1827)
박종우 (1587~1654)
김광악 (1591~1648)
허목 (1595~1682)
이원록 (1629~1688)
이구령 (1645~1715)
이익 (1681~1763)
안정복 (1712~1791)
황덕길 (1750~1827)
허전 (1797~1886)
허유 (1833~1904)
허훈 (1836~1907)
이상두 (1814~1882)
이수형 (1837~1908)
이익구 (1838~1912)
강병주 (1839~1909)
안종덕 (1841~1907)
김진호 (1845~1908)
노근수 (1845~1912)
조병규 (1846~1931)
하응노 (1848~1916)
이도추 (1848~1922)
조호래 (1854~1920)
허위 (1855~1908)
노상직 (1855~1931)
정제화 (1871~1938)
이동완 (1651~1726)
이태춘 (1704~1785)
이협 (1663~1747)
김박 (1621~1709)
도신수 (1598~1650)
김주우 (1598~1644)
최동직 (1602~1665)
황준량 (1517~1563)
오건 (1521~1574)
김우굉 (1524~1590)
김성구 (1641~1707)
김여건 (1660~1697)
김경온 (1692~1734)
김진동 (1727~1800) 김한동과 동일
김한동 (1740~1811)
김희주 (1760~1830) 김희분과 동일
김희소 (1758~1837) 김희분과 동일
김희락 (1672~1759) 김희분과 동일
김희분 (~)
김재전 (1785~1858)
김건수 (1804~1866) 김영수과 동일
김우수 (1804~1874) 김영수과 동일
김철수 (1822~1887) 김영수과 동일
김영수 (1862~1925)
김창숙 (1879~1962)
황기로 (1521~1567)
김륭 (1525~1594)
배삼익 (1534~1588)
배용길 (1556~1609)
배흥조 (1630~1689)
배면 (1651~1718)
배행검 (1673~1752)
배선원 (1806~1880)
배영진 (1864~1919)
배선한 (1886~1961)
김우옹 (1540~1603)
남몽오 (1528~1591)
박선장 (1555~1616)
조호익 (1545~1609)
조광익 (1537~1580)
김륵 (1540~1616)
김박 (1621~1709)
남치리 (1534~1580)
김집 (1558~1631)
신원록 (1516~1576)
신적도 (1574~1663) 신지제과 동일
신달도 (1576~1631) 신지제과 동일
신지제 (1562~1624)
신홍망 (1600~1673) 신열도과 동일
신열도 (1589~1659)
신체인 (1731~1812)
신정주 (1764~1827)
신면주 (1768~1845)
오운 (1540~1617)
장근 (1544~1619)
장승택 (1838~1916)
권용하 (1847~1910)
전근사 (1675~1732)
여팔거 (1672~1756)
남용만 (1709~1784)
임필대 (1709~1771)
이병형 (1784~1851)
이산두 (1680~1772)
허임 (1782~1855)
허훈 (1836~1907)
허위 (1855~1908)
신영학 (1853~1920)
장석룡 (1823~1908)
신유한 (1681~1752)
황익재 (1682~1747)
정식 (1683~1746)
강박 (1690~1742)
강세규 (1762~1833)
강세백 (1748~1824)
강세륜 (1761~1842)
정옥 (1694~1760)
장현광 (1554~1637)
안신 (1569~1648)
신달도 (1576~1631)
김응조 (1587~1667)
김치관 (1569~1661)
노경임 (1569~1620)
이민성 (1570~1629)
강재산 (1573~1636)
박종무 (1582~1664)
배상룡 (1574~1655)
유진 (1582~1635)
김하정 (1621~1677)
조임도 (1585~1664)
이민환 (1573~1649)
장경우 (1581~1656)
신열도 (1589~1659)
강대수 (1591~1658)
이주 (1599~1669)
이원정 (1622~1680)
이담명 (1646~1701)
장응일 (1599~1676)
장벽 (1622~1705)
장대열 (1678~1747) 장대림과 동일
장대림 (1663~1730)
장주 (1771~1832)
장복추 (1815~1900)
송준필 (1869~1943)
윤주하 (1846~1906)
이정기 (1872~1945)
장석영 (1851~1926)
장석신 (1841~1923)
장상학 (1872~1940)
장지연 (1864~1921)
금해규 (1861~1914)
이덕후 (1855~1927)
홍재겸 (1850~1930)
이기형 (1875~1946)
조긍섭 (1873~1933)
송홍래 (1875~1948)
장심택 (1833~1895)
장석빈 (1845~1913)
장윤상 (1868~1946)
김휴 (1597~1638)
신홍망 (1600~1673)
이도장 (1607~1677)
조함세 (1607~1690)
박황 (1608~)
여효주 (1608~1654)
김렴 (1612~1635)
정필규 (1760~1831)
김굉 (1739~1816)
김도화 (1825~1912)
유창식 (1858~1912)
백중각 (1867~1936)
김노선 (1811~1886)
김상종 (1847~1909)
김호직 (1874~1953)
김헌주 (1866~1936)
김만주 (1874~1947)
유인식 (1865~1928)
홍우정 (1595~1656)
황창술 (1628~1711)
김이만 (1683~1758)
김약련 (1730~1802)
이휘규 (1730~1802)
이동순 (1779~1860)
이언순 (1774~1845)
이유장 (1625~1701)
이동표 (1644~1700)
김간 (1653~1735)
정시한 (1625~1707)
황수일 (1666~1725)
권상임 (1622~1700)
박기녕 (1779~1857)
강대적 (~)
강명규 (1801~1867)
강봉문 (1735~1815)
강승 (1430~1500)
강여관 (1669~1715)
강용 (1846~1934)
강운 (1773~1834)
강원형 (1862~1914)
강윤 (1701~1782)
강응철 (1562~1635)
강익 (1523~1567)
강익문 (1568~1647)
강주복 (1782~1851)
강찬 (1647~1729)
강필효 (1764~1848)
강헌규 (1797~1860)
강헌지 (1624~1701)
고기승 (1845~1903)
고몽찬 (1793~1858)
고언백 (~1609)
고응척 (1531~1605)
공서린 (1483~1541)
공은 (~)
곽간 (1529~1593)
곽기수 (1549~1616)
곽수강 (1619~1660)
곽순 (1502~1545)
곽율 (1531~1593)
곽재겸 (1547~1615)
곽재우 (1552~1617)
곽전 (1839~1911)
곽진 (1568~1633)
곽천구 (1589~1670)
곽표 (1818~1875)
곽휘승 (1872~1903)
권경 (1604~1666)
권극량 (1584~1631)
권길 (1712~1774)
권달수 (1469~1504)
권대겸 (1659~1729)
권덕린 (1529~1573)
권도 (1575~1644)
권익 (1821~1876)
권도 (1823~1895)
권찬 (1826~1905)
권득기 (1570~1622)
권득여 (1636~1716)
권득중 (1687~1754)
권련하 (1813~1896)
권렴 (1701~1781)
권만 (1571~1635)
권만두 (1674~1753)
권박 (1607~1661)
권병 (1723~1772)
권보 (1709~1778)
권복흥 (~1592)
권사민 (1557~1634)
권사악 (1556~1612)
권사윤 (1732~1803)
권산해 (1403~1456)
권상구 (1862~1902)
권상길 (1610~1674)
권석원 (1798~1871)
권석하 (1841~1904)
권석회 (1789~1851)
권성구 (1642~1708)
권성오 (1587~1671)
권숭립 (1587~1654)
권예 (1495~1549)
권위 (1708~1786)
권위 (1762~1835)
권응도 (1616~1673)
권응수 (1516~1608)
권의 (1475~1558)
권장 (1489~1529)
권심언 (1502~1574)
권욱 (1556~1612)
권이복 (1740~1819)
권이진 (1668~1734)
권정 (1353~1411)
권정하 (1806~1892)
권제경 (1737~1814)
권종락 (~)
권주 (1457~1505)
권주 (1576~1651)
권주욱 (1825~1901)
권주환 (1825~1893)
권찬용 (1854~1923)
권찬환 (1782~1836)
권창식 (1724~1804)
권창진 (1597~1683)
권책 (1444~)
권치혁 (1826~1901)
권택모 (1774~1829)
권한공 (~1349)
권중화 (1322~1408)
권극립 (1558~1611)
권봉 (1592~1672)
권한성 (1811~1879)
권현 (1634~1695)
권현상 (1782~1840)
권호신 (1558~1629)
권흔 (1723~1792)
금영택 (1739~1820)
기학경 (1741~1809)
길재 (1353~1419)
김강 (1609~1669)
김개국 (1548~1603)
김건준 (1627~1688)
김경림 (1700~1708)
김계행 (1431~1521)
김광국 (1682~1775)
김광두 (1562~1608)
김광수 (1468~1563)
김광수 (1801~1871)
김굉필 (1454~1504)
김구 (1608~1669)
김귀희 (~1626)
김규옥 (1866~1922)
김기묵 (1809~1871)
김기보 (1531~1588)
김기선 (1806~1883)
김남일 (1635~1696)
김뉴 (1527~1508)
김담 (1416~1464)
김담수 (1535~1603)
김대명 (1536~1603)
김대유 (1479~1559)
김대현 (1553~1602)
김덕오 (1680~1748)
김돈 (1742~1799)
김득배 (1312~1362)
김득추 (1562~1660)
김낙춘 (1555~1586)
김난상 (1507~1570)
김면 (1541~1593)
김면운 (1775~1839)
김몽구 (1545~1615)
김성흡 (1575~1642)
김진기 (1694~1740)
김중첨 (1669~1712)
김몽화 (1723~1792)
김문기 (1399~1456)
김문옥 (1901~1960)
김범 (1515~1566)
김봉희 (1808~1872)
김사정 (1552~1620)
김사흔 (1804~1867)
김상옥 (1781~1844)
김상정 (1668~1728)
김석 (1850~1925)
김석규 (1826~1883)
김석희 (1842~1914)
김성중 (1705~1760)
김세락 (1804~1873)
김세량 (1502~1571)
김세영 (1878~1941)
김세용 (1673~1742)
김세필 (1473~1533)
김수삼 (1679~1767)
김수응 (1887~1954)
김숙자 (1398~1456)
김숭조 (1598~1632)
김시성 (1602~1676)
김시엽 (1662~1732)
김선 (1758~1815)
김시정 (1579~1623)
김시침 (1600~1670)
김양근 (1734~1799)
김양렬 (1624~1703)
김양식 (1791~1862)
김언건 (1511~1571)
김여욱 (1581~1661)
김연 (1487~1544)
김엽 (~)
김령 (1576~1650)
김영 (1765~1840)
김영 (1475~1528)
김영락 (1831~1906)
김영진 (1629~1723)
김용한 (1738~1806)
김우권 (1844~1896)
김우수 (1804~1877)
김우창 (1830~1906)
김우추 (1581~1642)
김요흠 (1614~1656)
김위 (1709~1788)
김유수 (1694~1761)
김윤명 (1541~1604)
김의정 (1495~1547)
김익동 (1793~1860)
김익중 (1678~1740)
김인보 (1583~1666)
김인상 (1557~1592)
김일손 (1464~1498)
김재락 (1798~1860)
김재로 (1850~1928)
김재묵 (1794~1873)
김재석 (1857~1925)
김재곤 (1838~1888)
김정 (1606~1681)
김정룡 (1561~1619)
김정수 (1576~1645)
김제 (~)
김주 (~)
김종걸 (1628~1708)
김종규 (1765~1830)
김종락 (1796~1875)
김종휴 (1783~1866)
김좌영 (1789~1856)
김중하 (1784~1860)
김지대 (1190~1266)
김진 (1599~1684)
김진구 (1651~1704)
김진선 (1854~1919)
김진성 (1822~1892)
김진 (1500~1580)
김극일 (1522~1585)
김수일 (1528~1583)
김성일 (1538~1593)
김진우 (1786~1855)
김진하 (1786~1865)
김창조 (1581~1637)
김충선 (1571~)
김취문 (1509~1570)
김취성 (1492~1551)
김태명 (1661~1721)
김태일 (1637~1702)
김하구 (1676~1762)
김한철 (1430~1496)
김해 (1633~1716)
김해일 (1640~1691)
김헌 (1566~1624)
김홍제 (1661~1737)
김화중 (1656~1743)
김길구 (1684~1770)
김광여 (1732~1799)
김회 (1578~1641)
김휘약 (1823~1891)
김휘운 (1756~1819)
김휘준 (1820~1898)
김휘철 (1842~1903)
김희분 (1760~1822)
김희삼 (1507~1560)
남건 (1850~1943)
남경조 (1753~1793)
남경훈 (1572~1612)
남길 (1594~1654)
남상소 (1631~1709)
남노명 (1642~1721)
남국주 (1690~1759)
남기만 (1730~1796)
문동도 (1646~1699)
남융달 (1565~1652)
남연 (1598~1664)
남천한 (1607~1686)
남만회 (1826~1886)
남붕익 (1641~1687)
남명흠 (1676~1740)
남기형 (1700~1756)
남준형 (1703~1778)
남택만 (1729~1810)
남극만 (1734~1802)
남일운 (1755~1820)
남상운 (1759~1714)
남경악 (1772~1731)
남화수 (1781~1851)
남기수 (1788~1837)
남곤수 (1789~1847)
남진만 (1697~1773)
남천호 (1635~1716)
남학명 (1654~)
남효원 (1819~1890)
노경필 (1554~1595)
노계정 (1695~1755)
노광무 (1808~1893)
노분 (1437~1478)
노우명 (1471~1523)
노희 (1494~1550)
노사예 (1538~1594)
노수신 (1515~1590)
노진 (1518~1578)
도경유 (1596~1637)
도성유 (1571~1649)
도신여 (1605~1675)
도신징 (1604~1678)
도응유 (~)
도한기 (1836~1902)
유낙문 (1776~1807)
류단 (1580~1612)
유병문 (1776~1826)
류빈 (1520~1591)
유숭조 (1452~1512)
유식 (1755~1822)
유연근 (1857~1933)
유우잠 (1575~1635)
유의목 (1785~1833)
유인배 (1589~1668)
류자미 (1430~1490)
유중엄 (1538~1571)
유치구 (1793~1854)
유치덕 (1823~1881)
유치유 (1811~1871)
류태좌 (1763~1837)
유학 (1607~1688)
문경동 (1457~1521)
문위세 (1534~1600)
문익점 (1329~1398)
문주헌 (1809~1877)
문후 (1574~1644)
민종혁 (1762~1838)
민치긍 (1810~1885)
박경 (1573~1654)
박경신 (~)
박경전 (1553~1623)
박곤 (~)
박공구 (1587~1658)
박규양 (1840~1903)
박규진 (1855~)
박기봉 (1643~1712)
박눌생 (1374~1449)
박운달 (1491~1558)
박경신 (1414~1462)
박담 (1655~1694)
박두명 (1788~1860)
박래오 (1713~1785)
박이순 (1748~1825)
박명부 (1571~1639)
박문부 (1563~1605)
박민한 (1778~1837)
박성세 (1652~1705)
박평 (1686~1752)
박치엽 (1790~1874)
박성양 (~)
박세도 (1651~1727)
박세륜 (1807~1857)
박세용 (1685~1773)
박수서 (1567~1627)
박수일 (1553~1597)
박수촌 (1572~1652)
박숙 (1665~1748)
박순덕 (1836~1915)
박승 (1520~1577)
박승진 (1853~1930)
박시찬 (1842~1905)
박신경 (1713~1790)
박신윤 (1661~1698)
박심문 (1408~1456)
박영곤 (1848~1926)
박영로 (1814~1904)
박용상 (1680~1739)
박우현 (1829~1907)
박운 (1493~1562)
박융 (~1424)
박응곤 (1853~1916)
박응형 (1605~1658)
박의집 (1846~1912)
박이곤 (1730~1783)
박익 (1332~1398)
박인찬 (1832~1919)
박재우 (1829~1870)
박재현 (1830~1883)
박재형 (1838~1900)
박전 (1514~1558)
박정걸 (1683~1746)
박정태 (1841~1886)
박종현 (1823~1900)
박주종 (1803~1877)
박중채 (1654~1725)
박창우 (1636~1702)
박춘무 (1568~1646)
박치준 (1838~1898)
박태고 (~)
박태무 (1677~1756)
박하담 (1479~1560)
박하징 (1484~1566)
박한식 (1860~1930)
박한주 (1459~1504)
박한호 (1772~1834)
박형동 (1875~1920)
박호양 (1851~1899)
박희문 (1586~1659)
반우형 (~)
배극소 (1819~1871)
배상설 (1760~1789)
배상지 (1351~1413)
배상호 (1594~1632)
배신 (1520~1573)
배인길 (1571~1592)
배진하 (1838~1912)
백인국 (1530~1613)
백원발 (1597~1671)
백세흥 (1630~1699)
백현룡 (1543~1622)
백호운 (1809~1883)
변상수 (1696~1757)
변안렬 (~1390)
변종기 (1854~1937)
변중량 (1345~1398)
박팽년 (1417~1456)
성삼문 (1418~1456)
하위지 (1412~1456)
유성원 (~1456)
서상렬 (1843~1867)
서석린 (1710~1765)
서섭 (~)
서수석 (1841~1925)
서영곤 (1831~1913)
서사선 (1579~1650)
서응윤 (1836~1896)
서일원 (1595~1652)
서찬규 (1825~1905)
서창재 (1726~1781)
서택호 (1809~1894)
서응순 (1843~1919)
서한정 (1407~1490)
성기인 (1674~1737)
성언근 (1740~1818)
손경욱 (1665~1710)
손계돈 (1470~1530)
손기양 (1559~1617)
손린 (1566~1628)
손만래 (1680~1760)
손석필 (1641~1707)
손소 (1433~1484)
손여규 (1658~1681)
손시의 (1675~1733)
손동걸 (1757~1818)
손여두 (1643~1713)
손여제 (1651~1740)
손염조 (1785~1858)
손엽 (1544~1600)
손영로 (1820~1891)
손조서 (~)
손중돈 (1463~1529)
손한기 (1668~1745)
손흥례 (1548~1578)
송계흠 (1856~1934)
송규필 (1780~1847)
송기선 (1833~1917)
송덕부 (1603~1674)
송동윤 (1729~1799)
송량 (1534~1618)
송이석 (1698~1782)
송석충 (1454~1524)
송인수 (1499~1547)
송정렴 (1621~1684)
송정환 (1711~1778)
송정흠 (1839~1883)
송호문 (1862~1907)
송호언 (1865~1907)
송홍익 (1802~1876)
송희규 (1494~1558)
신내옥 (1525~1616)
신동현 (1641~1706)
신몽삼 (1648~1711)
신상하 (1839~1906)
신상헌 (1842~1911)
신석림 (1766~1840)
신석호 (~)
신완 (1738~)
신우 (~)
신의명 (1654~1716)
신인손 (1384~1445)
신재수 (1828~1895)
신재형 (1649~1697)
신정모 (1691~1742)
신종호 (1827~1906)
신좌모 (1799~1877)
신지효 (1561~1592)
신진운 (1849~1922)
신집 (1580~1640)
신창조 (1753~1833)
신채 (1610~1672)
신택화 (1728~1800)
신필흠 (1806~1866)
신현 (~)
신용희 (~)
신연 (1534~1595)
신활 (1576~1643)
신흘 (1550~1614)
심성지 (1831~1904)
안경시 (1712~1794)
안공 (1569~1648)
안관 (1491~1652)
안극가 (1547~1614)
안우 (1449~1527)
안덕문 (1747~1811)
안도징 (1616~1678)
안명하 (1682~1752)
안몽징 (1611~1654)
안민수 (1724~1795)
안숙 (1572~1624)
안상한 (1604~1661)
안영로 (1797~1846)
안영호 (1854~1896)
안유중 (1802~1868)
안인일 (1736~1806)
안일리 (1661~1731)
안정려 (1871~1939)
안정한 (1840~1914)
안정현 (1871~1928)
안증 (1494~1533)
안지 (1394~1474)
안찬 (1829~1888)
안창제 (1866~1931)
안처택 (1705~1775)
안축 (1282~1348)
안향 (1243~1306)
안호연 (1827~1898)
안효제 (1850~1916)
안후정 (1659~1702)
안희 (1551~1613)
양희지 (1439~1504)
여대로 (1552~1592)
여석보 (1824~1889)
여응구 (1523~1577)
여효은 (1612~1671)
여효증 (1604~1679)
여희림 (1481~1553)
오극성 (1559~1616)
오선기 (1630~1703)
오승 (1364~1444)
오식 (1536~1572)
오경덕 (1556~1643)
오익 (1591~1671)
오인순 (1866~1905)
오준선 (1851~1931)
옥고 (1382~1436)
우규환 (1838~1911)
우석간 (1782~1838)
우석문 (1793~1860)
우성규 (1830~1905)
우재악 (1734~1814)
우탁 (1263~1342)
우길생 (~)
우현보 (1333~1400)
우효설 (1854~1935)
유문룡 (1753~1821)
유병헌 (1842~1918)
유식 (1552~1592)
유전 (1051~1122)
유정 (1544~1610)
유평우 (1804~1861)
유한인 (1741~1806)
유홍원 (1716~1781)
윤가묵 (1806~1890)
윤사진 (1713~1792)
윤상 (1373~1455)
윤석희 (1888~1962)
윤시형 (1602~1663)
윤의정 (1525~1612)
이주천 (1600~1654)
이간 (1576~1637)
이갑용 (1734~1799)
이개 (1655~1736)
이경록 (1736~1804)
이경주 (1500~1597)
이공 (1533~1612)
이근오 (1760~1834)
이광로 (1828~1903)
이광우 (1529~1619)
이광익 (1598~1656)
이광정 (1636~1694)
이광점 (~)
이하구 (1658~1733)
이완 (~)
이광준 (1531~1609)
이교문 (1866~1940)
이구 (1613~1654)
이구성 (1756~1835)
이구징 (1609~1688)
이규일 (1826~1904)
이규집 (1779~1849)
이기 (1699~1779)
이기두 (1867~1920)
이눌 (1569~1599)
이능구 (1846~1896)
이능윤 (1850~1930)
이달충 (~1385)
이대임 (1574~1635)
이덕록 (1722~1792)
이덕표 (1664~1745)
이도묵 (1843~1916)
이도일 (1581~1667)
이도장 (1603~1644)
이도현 (1837~1907)
이동간 (1757~1822)
이두훈 (1856~1918)
이령 (1653~1700)
이로 (1544~1598)
이만백 (1657~1717)
이만승 (1590~1659)
이만여 (1861~1904)
이만용 (1839~1915)
이만흡 (1740~1814)
이말동 (1443~1518)
이맹전 (1392~1480)
이맹현 (1436~1487)
이면주 (1827~1910)
이명배 (1672~1736)
이명윤 (1652~1708)
이문량 (1498~1581)
이문흥 (1415~1495)
이구 (1484~1536)
이민덕 (1728~1786)
이반 (1686~1718)
이병영 (1784~1851)
이병철 (1874~1914)
이병호 (1851~1908)
이보흠 (~1457)
이복 (1626~1688)
이봉환 (1701~1777)
이상규 (1846~1922)
이상백 (1845~1930)
이상언 (1597~1666)
이상채 (1787~1854)
이상현 (1817~1895)
이상호 (1864~1919)
이서 (1566~1651)
이석영 (1851~1909)
이성화 (1821~1899)
이세형 (1685~1761)
이수인 (1739~1822)
이숙 (1550~1615)
이순 (1530~1606)
이순몽 (1386~1449)
이숭인 (1347~1392)
이승 (1552~1598)
이승수 (1857~1912)
이시선 (1625~1715)
이시수 (1790~1849)
이시일 (1731~1792)
이안적 (1651~1707)
이암 (1297~1364)
이강 (1333~1368)
이원 (1368~1430)
이양오 (1737~1811)
이언괄 (1494~1553)
이언영 (1568~1639)
이언직 (1631~1698)
이여규 (1713~1772)
이여림 (~)
이구 (~)
이영진 (1629~1698)
이여빈 (1556~1631)
이연성 (1824~1893)
이열 (1553~1609)
이영 (1670~1735)
이예 (1381~1452)
이오 (~)
이우상 (~)
이우세 (1751~1830)
이우윤 (1792~1855)
이운상 (1829~1891)
이운룡 (1562~1610)
이운정 (1819~1893)
이원복 (1842~1886)
이윤룡 (1776~1855)
이윤 (1462~)
이응벽 (1543~1599)
이응협 (1826~1894)
이의립 (~)
이의윤 (1564~1597)
이의활 (1573~1627)
이이장 (1642~1727)
이이정 (1619~1679)
이이풍 (1768~1827)
이익만 (1795~1870)
이익룡 (1732~1784)
이익호 (1832~1885)
이인원 (~)
이인중 (1825~1886)
이인행 (1758~1833)
이재강 (1814~1884)
이재목 (~)
이재영 (1804~1892)
이전 (1832~1886)
이전인 (1561~1618)
이정 (1512~1571)
이정 (1541~1613)
이정기 (1613~1669)
이정병 (1759~1834)
이정보 (1766~1845)
이정재 (1755~1817)
이정효 (1832~1917)
이제권 (~)
이제상 (1863~1932)
이제영 (1799~1871)
이종문 (1566~1639)
이지영 (1585~1639)
이지화 (1588~1666)
이지형 (1597~1663)
이구 (1620~1684)
이익필 (1613~1691)
이시격 (1638~1698)
이종욱 (1798~1872)
이종윤 (1431~1490)
이종준 (~1499)
이홍준 (~)
이종홍 (1879~1936)
이종화 (1825~1905)
이종휴 (1761~1832)
이주 (~1504)
이주대 (1689~1755)
이준 (1540~1623)
이준구 (1851~1924)
이중 (1488~1557)
이중량 (1504~1582)
이중립 (1533~1517)
이중륙 (1728~1823)
이중현 (1449~1508)
이지용 (1753~1831)
이지헌 (1840~1898)
이진만 (1675~1752)
이진택 (1738~1805)
이찬 (1575~1654)
이창진 (1619~1684)
이채 (1616~1684)
이천봉 (1567~1634)
이철명 (~)
이충국 (1715~1777)
이충민 (1588~1673)
이치우 (1828~1905)
이치적 (1776~1850)
이탁소 (1836~1885)
이탁영 (1870~1944)
이태 (1483~1536)
이태우 (1714~1770)
이태일 (1860~1944)
이택진 (1794~1856)
이표 (1725~1789)
이하상 (1845~1910)
이한보 (1675~1748)
이한응 (1778~1864)
이함 (1554~1632)
이해 (1496~1550)
이헌락 (1718~1791)
이현량 (1649~1715)
이현보 (1467~1555)
이형천 (1650~1709)
이홍기 (1531~1582)
이홍량 (1531~1592)
이홍우 (1535~1594)
이홍조 (1595~1660)
이환 (1582~1661)
이회경 (1784~1866)
이후겸 (1681~1724)
이훈호 (1859~1932)
이휘재 (1795~1875)
이휘준 (1806~1867)
이휴복 (1568~1624)
이희석 (1816~1874)
이희증 (1486~1509)
이희민 (1408~1521)
이희안 (1504~1559)
이윤서 (1574~1624)
임만휘 (1783~1834)
임석형 (1751~1816)
임운 (1517~1602)
임응성 (1806~1866)
임진부 (1586~1657)
임화세 (1675~1731)
임훈 (1500~1584)
장경세 (1547~1615)
장계훈 (1828~1891)
장영 (1622~1705)
장만걸 (1654~1717)
장사경 (1756~1817)
장선 (1631~1679)
장연상 (1655~1727)
장승원 (1853~1917)
장시표 (1819~1894)
장심학 (1804~1865)
장안세 (~)
장위항 (1678~1747)
장이유 (1598~1660)
전경창 (1532~1585)
전계신 (1563~1615)
전광옥 (1694~1761)
전구 (1724~1806)
전구원 (1615~1691)
전규병 (1840~1905)
전백영 (1345~1412)
전오륜 (1631~1720)
전우 (1548~1616)
전원발 (~1421)
전유경 (~)
전치원 (1527~1596)
정각 (1799~1879)
정관검 (1813~1883)
정광복 (1716~1796)
정광리 (1722~1799)
정광재 (1758~1778)
정광천 (1553~1594)
정구 (1543~1620)
정극후 (1577~1658)
정기원 (1559~1597)
정내원 (1766~1845)
정담 (1552~1634)
정대임 (1553~1594)
정도휴 (1807~1878)
정동익 (1737~1802)
정동환 (1732~1800)
정래석 (1808~1893)
정래성 (1744~1835)
정몽양 (1679~1745)
정몽주 (1337~1392)
정문섭 (1859~1929)
정민도 (1553~1635)
정민병 (1800~1882)
정백휴 (1781~1843)
정사철 (1530~1593)
정사하 (1713~1779)
정사화 (1831~1883)
정상관 (1776~1820)
정석달 (1660~1720)
정석호 (1840~1906)
정석림 (1669~1739)
정석현 (1656~1730)
정선 (1634~1717)
정세아 (1535~1612)
정시연 (1632~1687)
김함석 (1844~1907)
정시휴 (1800~1871)
정언굉 (1569~1640)
정언형 (1713~1790)
정여창 (1450~1504)
정여해 (1450~1530)
정박 (1602~1656)
정요천 (1639~1700)
정요성 (1650~1724)
정태래 (~)
정도건 (1668~1740)
정옥형 (1486~1549)
정온 (1569~1641)
정용기 (1862~1907)
정우섭 (1832~1910)
정우재 (1841~1895)
정위 (1740~1811)
정유곤 (1782~1865)
정익동 (~)
정인홍 (1535~1623)
정일신 (1683~1738)
정일전 (1714~1796)
정진 (1713~1752)
정장 (1569~1614)
정장 (1651~1708)
정전 (1569~1639)
정제 (1689~1765)
정제용 (~)
정종덕 (1804~1878)
정종소 (~)
정중직 (1694~1765)
정지락 (1773~1857)
정지성 (1718~1801)
정지집 (1693~1754)
정진건 (~)
정진백 (1867~1924)
정진소 (1878~1956)
정진헌 (1834~1911)
정찬 (1548~1613)
정천주 (1666~1710)
정총 (1358~1397)
정추 (1333~1382)
정치구 (1824~1884)
정치오 (1844~1917)
정하원 (1762~1809)
정하준 (1737~1806)
정하준 (1738~1819)
정하호 (1776~1821)
정학렴 (1740~1833)
정호신 (1605~1649)
정호의 (1602~1655)
정호신 (1605~1653)
정호인 (1597~)
정환직 (1843~1907)
조경온 (1548~1592)
조구령 (1657~1719)
조규양 (1706~1776)
조극승 (1824~1899)
조극승 (1803~1877)
조기원 (1574~1652)
조동좌 (1809~1888)
조려 (1420~1489)
조릉 (1607~1683)
조병시 (1837~1911)
조병희 (1855~1917)
조선적 (1697~1756)
조성신 (1765~1835)
조시광 (1669~1740)
조식 (1501~1572)
조언관 (1805~1870)
조언광 (1656~1718)
조완규 (~1454)
조용석 (1705~1774)
조위경 (1698~1780)
조유찬 (1860~1934)
조임 (1573~1644)
조정규 (1853~1920)
조영원 (1577~1640)
조대윤 (1638~1705)
조정용 (1694~1769)
조종도 (1537~1597)
조주원 (1851~1925)
조준도 (1576~1665)
조채신 (1717~1797)
조홍복 (1773~1841)
조휘영 (1805~1854)
주맹헌 (1617~1703)
주박 (1524~)
주재성 (1681~1743)
주필대 (1616~1693)
주희 (1130~1200)
진건 (1598~1678)
진대봉 (1594~1658)
차응주 (1524~1584)
차홍섭 (~)
채구장 (1684~1743)
채몽연 (1561~1638)
채무 (1588~1670)
채무적 (1500~1554)
채선견 (1574~1644)
채성원 (1870~1932)
채소권 (1480~1548)
채수 (1449~1515)
채응린 (1529~1584)
채제공 (1720~1799)
채준도 (1834~1904)
채필훈 (1759~1838)
채헌식 (1855~1933)
채형구 (1652~1723)
최경윤 (1534~1602)
최계 (1567~1622)
최광벽 (1728~1791)
최동익 (1868~1912)
최림 (1779~1841)
최문한 (~)
최자점 (~)
최운부 (1548~1575)
최응천 (1615~1673)
최산휘 (1585~1637)
최숙정 (1433~1480)
최승우 (1770~1841)
최시술 (1839~1923)
최신남 (1595~1673)
최영록 (1793~1871)
최옥 (1762~1840)
최진립 (1568~1636)
최진추 (1674~1730)
최치덕 (1699~1770)
최치원 (857~)
최학승 (1817~1878)
최헌식 (1846~1915)
최현달 (1867~1942)
최호문 (1800~1850)
최화진 (~)
최훈 (~)
탁광무 (~)
탁신 (1367~1426)
표연말 (1449~1498)
하시찬 (1750~1828)
하연 (1376~1453)
하응명 (1699~1769)
하항 (1538~1590)
한권 (1386~1448)
한산두 (1556~1627)
한옹 (1352~1425)
한철충 (1321~)
한극창 (1600~1650)
한필수 (1696~1751)
허경윤 (1573~1646)
허선 (1618~1672)
허원식 (1828~1891)
허조 (1369~1439)
허조 (1430~1456)
허숙 (1857~1942)
허용 (1860~1933)
허채 (1859~1935)
허후 (1398~1453)
홍경손 (1409~1481)
홍경승 (1567~)
홍귀명 (1714~1775)
홍구범 (1691~1762)
홍귀달 (1438~1504)
홍구서 (1726~1779)
홍기우 (1827~1912)
홍로 (1366~1392)
홍석 (1736~1805)
홍세공 (1541~1598)
홍언충 (1473~1508)
홍여하 (1621~1678)
홍우원 (1605~1687)
홍위 (1559~1624)
홍전 (1804~1865)
홍준형 (1606~1666)
홍중명 (1654~1725)
홍흔 (1601~1653)
황계희 (1727~1785)
황난선 (1825~1908)
황뉴 (1578~1626)
황도연 (1857~1913)
황명하 (1651~1765)
황사우 (1486~1536)
황시 (1555~1626)
황유증 (1564~1620)
황서한 (1774~1819)
황여헌 (1486~)
황효헌 (1491~1532)
황원선 (1798~1873)
황응규 (1518~1599)
황응청 (1524~1605)
황희 (1363~1452)
권흡 (1710~1748)
김응건 (1808~1885)
문성준 (~)
이경천 (1576~1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