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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奉事傳 안신갑

자라가슴 2014. 10. 27. 00:27

安奉事傳

이진상(李震相)
 
 

咸州之安。出自順興。在高麗。有文貞公軸,文簡公宗源。入我朝。貞度公景恭,靖肅公純,都憲崇孝,府使該,參奉尊道,司直灌。冠冕相承。名德俱茂。而懼翁德老。潛光默修。爲士友推重。有子曰璜。幼而氣節磊落。嘗以忠義自勵。時當昭敬王之世。昇平恬嬉。有崇極將圮之兆。慨然有殉身衛國之志。兼習弓馬韜略。年二十登武庭試。王壯其貌奇其氣。特拜宣傳官。以親老乞終養。朝夕調滑甘。不以貧爲槩。其侍疾不解帶。屢旬不懈。居喪致哀毁。自以世家文學。更折節請業于李一齋先生。又從吳竹牖澐。講求退溪李子心法之傳。日硏究經旨。辛卯朝議以璜緩急可使。陞五品爲彰信校尉。壬辰倭奴平秀吉入寇。列邑瓦解。賊鏖濟浦。且向金海。璜聞變雪涕。單騎至半途。大呼入賊陣。殺傷甚衆。會安信甲,李潚帥衆至。合勢直擣城下。賊已入不可以衝突。回至府西橋。橋爲潮所沒。官軍之爲賊所迫者。皆渰於水。璜獨躍馬前渡。登高覘賊。指天爲誓。頃之聞昭敬王出駐龍灣。西向痛哭曰肉食之徒。艸間求活。使君父蒙塵耶。行且招募。兵勢稍振。遂簡精銳。出沒于靈山漆原界。或逐留屯之賊。或截沿江之寇。江右之民。賴以爲命。而義士樂爲之致死。與判官李晩成約爲聲援。進馘退守。乃曰吾家世臣。會當判一死報國恩。過晉州。與湖南義將金千鎰語。涕泗交流。誓同力恢復。未幾賊陷晉州。千鎰死之。璜聞卽馳赴而不及。甲午皇明兵南下。賊撤屯歸。璜揣其必再逞。修頹堞繕器仗。丁酉秋倭果復至。以大衆掠山淸刳咸陽。璜時在德裕山。與其兄參奉球講兵事。卽整部伍。倍道至換鵝亭下。擇要害立壘柵。爲遮截計。選驍勇十數。衣馬皆與己同。伏之山谷間。身率精騎前突。疾若風雨。若將襲擊者。忽馳入水上軍。偃旗息鼓若無人。忽一騎從左麓下馳突如前。忽一騎從西林出。超距賈勇。往來閃忽。賊驚惑不敢逼。夜深月黑。毁舍作筏。潛渡江掩擊之。剿殺無筭。有頃安信甲,李潚各率兵來援。分左右翼進戰益急。信甲馳馬掠陣中賊砲死。璜氣湧如山。直欲突進生呑賊。潚執手止之。璜曰賊氣旣衰。機不可失。鼓勇先登。軍皆殊死戰。賊衆大奔。悉趨江左。轉掠達城。璜以輕騎躡其後。直至八公山僧舍。與諸壯士焚香告天。嚴師律縱間諜。聲言將盡劉賊。以雪國恥。賊聞風益駭。不戰而退。戊戌平酋死。亂始平。遂歸鄕里。結廬墓下。未嘗以戰功自居。朝廷但爵以奉事。識者惜其屈。後七年乙巳。參宣武原從勳錄。貤贈父母。及昭敬王禮陟。而光海政亂。璜益無意於世。杜門讀古人書。間以游泳於山巓水涯。沒世而無悔。天啓癸亥卒。江右士女聞之流涕。

外史氏曰吾東龍蛇之變。非有安奉事。江右尤糜爛矣。換鵝之捷。固亦奇勳。獨不以一首級徼賞。角巾歸第。口不言剿倭事。殆其敦詩書篤孝友之驗歟。


📜 원문 해독


咸州之安。出自順興。在高麗。

→ 함주(咸州)의 안씨는 그 계통이 순흥(順興)에서 나왔으며, 고려 때 이미 존재하였다.

有文貞公軸,文簡公宗源。入我朝。

→ (가문에) 문정공 안축과 문간공 안종원이 있었고, 조선에 들어와서는,

貞度公景恭,靖肅公純,都憲崇孝,府使該,參奉尊道,司直灌。

→ 정도공 안경공, 정숙공 안순, 도헌 안숭효, 부사 안해, 참봉 안존도, 사직 안관 등의 인물이 있었다.

冠冕相承。名德俱茂。

→ (이 가문은) 높은 벼슬과 덕망이 대대로 이어져, 이름과 인덕이 함께 빛났다.

而懼翁德老。潛光默修。爲士友推重。

→ (그 가운데) 조부 덕로(德老)는 빛을 감추고 묵묵히 수양하여, 선비들과 친구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有子曰璜。幼而氣節磊落。嘗以忠義自勵。

→ 그에게 아들 황(璜)이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기개가 뛰어나고 강직했으며, 늘 충의(忠義)를 스스로의 지침으로 삼았다.

時當昭敬王之世。昇平恬嬉。有崇極將圮之兆。

→ 당시 조정은 선조(昭敬王)의 시대였고, 태평하고 안일했으나, 극치에 오른 것에는 무너질 조짐이 있었다.

慨然有殉身衛國之志。兼習弓馬韜略。

→ (이에) 안황은 감개하여 몸을 바쳐 나라를 지키겠다는 뜻을 품고, 활쏘기와 기마술, 병법을 함께 익혔다.


年二十登武庭試。王壯其貌奇其氣。特拜宣傳官。

→ 스무 살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왕이 그 용모와 기개를 높이 평가하여 특별히 선전관에 임명하였다.

以親老乞終養。朝夕調滑甘。不以貧爲槩。

→ 그러나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을 그만두기를 청하였고, 아침저녁으로 부드럽고 맛있는 것을 마련하였으며, 가난을 개의치 않았다.

其侍疾不解帶。屢旬不懈。

→ 병든 부모를 간호할 때는 띠를 풀지 않고, 수십 일 동안 지치지 않았다.

居喪致哀毁。

→ 부모상을 당해서는 슬픔을 다하여 몸이 쇠약해지도록 상을 치렀다.


自以世家文學。更折節請業于李一齋先生。

→ 안황은 자기 집안이 문학 있는 집안이라 생각했지만, 다시 몸을 낮추어 이일재(李一齋) 선생에게 학문을 배웠고,

又從吳竹牖澐。講求退溪李子心法之傳。

→ 또 오죽유(吳竹牖) 선생에게서 퇴계 이황의 마음공부법을 전수받아 강론하였다.

日硏究經旨。

→ 날마다 경전의 뜻을 연구하였다.


辛卯朝議以璜緩急可使。陞五品爲彰信校尉。

→ 신묘년(1591)에 조정은 안황을 위급한 때에 쓸 수 있는 인물이라 하여, 5품으로 승진시켜 ‘장신교위’에 임명하였다.


壬辰倭奴平秀吉入寇。列邑瓦解。賊鏖濟浦。且向金海。

→ 임진년(1592), 왜적(도요토미 히데요시)이 침입하니, 여러 고을이 무너졌고, 적은 제포에서 격전을 벌이고 곧 김해로 향하였다.

璜聞變雪涕。單騎至半途。大呼入賊陣。殺傷甚衆。

→ 안황은 그 소식을 듣고 눈물로 얼굴을 적시며 홀로 말을 타고 가다 중도에서 적진으로 뛰어들어 큰 소리로 외치며 돌격하였고, 많은 적을 죽였다.


會安信甲,李潚帥衆至。合勢直擣城下。賊已入不可以衝突。

→ 때마침 안신갑과 이수(李潚)가 군사를 이끌고 도착하여 힘을 합쳐 성 아래로 돌격했으나, 적은 이미 성에 들어가 있어 돌파할 수 없었다.

回至府西橋。橋爲潮所沒。官軍之爲賊所迫者。皆渰於水。

→ 다시 부서(府西)의 다리로 돌아왔는데, 다리가 밀물에 잠겼고, 관군 중 적에게 쫓기던 자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璜獨躍馬前渡。登高覘賊。指天爲誓。

→ 안황은 홀로 말을 몰아 앞장서 건너고, 높은 곳에 올라가 적의 동정을 살핀 후, 하늘을 가리키며 맹세하였다.


頃之聞昭敬王出駐龍灣。西向痛哭曰:肉食之徒,艸間求活,使君父蒙塵耶。

→ 얼마 후 선조께서 용만으로 피난하신다는 말을 듣고, 서쪽을 향해 통곡하며 말했다: “고기를 먹는 대신들이 풀밭에서 목숨을 구걸하고, 어찌 임금과 부모를 흙먼지 속에 두는가!”


(이후 전투 및 유격 활동, 전후 은거, 죽음까지의 해독은 이어서 제공 가능합니다.)


여기까지가 1차 해독 분량이며, 이어지는 전투 묘사부터 생애 말기까지도 계속해서 문장 단위로 해석해 드릴 수 있습니다. 계속 이어서 해석해드릴까요?

 

나의 말:

 

ChatGPT의 말:

네, 이어서 계속 해독해드리겠습니다. 앞서 내용에 이어 임진왜란 당시 활약과 전후 생애 부분을 해석합니다.


📜 원문 해독 (2/2)


行且招募。兵勢稍振。遂簡精銳。出沒于靈山漆原界。

→ 안황은 직접 다니며 병사들을 모집하였고, 군세가 점차 회복되었다. 이에 정예 병력을 선발하여, 영산(靈山)과 칠원(漆原) 지역을 드나들며 전투하였다.

或逐留屯之賊。或截沿江之寇。江右之民。賴以爲命。

→ 때로는 주둔해 있던 적을 쫓고, 때로는 강을 따라 오는 적을 막았으니, 강 오른쪽 지역(경남)의 백성들은 그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而義士樂爲之致死。與判官李晩成約爲聲援。進馘退守。

→ 의병들 또한 그를 따르기를 기뻐하며 목숨을 걸었고, 판관 이만성과 함께 서로 지원하기로 약속하며, 적의 귀를 베고 나아갔다가, 형세를 봐서 물러났다.

乃曰:吾家世臣。會當判一死報國恩。

→ 안황은 말하기를 “우리 가문은 대대로 임금을 섬긴 집안이니, 마땅히 한 번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하였다.


過晉州。與湖南義將金千鎰語。涕泗交流。誓同力恢復。

→ 진주를 지나며 호남의 의병장 김천일과 함께 말하였는데, 눈물 콧물이 뒤섞이도록 통곡하며 함께 힘을 합쳐 나라를 되찾자고 맹세하였다.

未幾賊陷晉州。千鎰死之。璜聞卽馳赴而不及。

→ 얼마 지나지 않아 진주가 함락되고, 김천일이 전사하였다. 안황은 그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갔으나 이미 늦었다.


甲午皇明兵南下。賊撤屯歸。璜揣其必再逞。修頹堞繕器仗。

→ 갑오년(1594)에 명나라 군대가 남하하자, 왜군은 진지를 철수하고 돌아갔다. 안황은 그들이 반드시 다시 침략할 것이라 여겨, 무너진 성을 수리하고 무기와 병기를 정비하였다.


丁酉秋倭果復至。以大衆掠山淸刳咸陽。

→ 정유년(1597) 가을, 왜적이 과연 다시 쳐들어와 산청과 함양을 약탈하고 주민을 죽였다.

璜時在德裕山。與其兄參奉球講兵事。

→ 그때 안황은 덕유산에 있었고, 형인 참봉 안구(安球)와 함께 군사 전략을 의논하고 있었다.

卽整部伍。倍道至換鵝亭下。擇要害立壘柵。爲遮截計。

→ 즉시 병력을 정비하고 속히 달려가 환아정 아래에 도착하여, 요충지를 선택해 진을 치고 울타리를 세워 적을 차단할 계책을 세웠다.


選驍勇十數。衣馬皆與己同。伏之山谷間。

→ 용맹한 병사 열여 명을 뽑아 복장과 말의 장비를 자신과 똑같이 하게 한 후, 산골짜기에 매복시켰다.

身率精騎前突。疾若風雨。若將襲擊者。

→ 자신은 정예 기병을 이끌고 앞서 돌진하였는데, 그 기세가 바람과 비같이 빠르고 맹렬하여 마치 급습하는 군대처럼 보였다.


忽馳入水上軍。偃旗息鼓若無人。

→ 갑자기 수상(水上)의 적진으로 달려들며, 깃발을 내리고 북소리도 멈추어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조용히 움직였다.

忽一騎從左麓下馳突如前。忽一騎從西林出。

→ 어느덧 한 기병이 왼쪽 산기슭에서 나타나 돌진하였고, 또 다른 기병은 서쪽 숲에서 튀어나왔다.

超距賈勇。往來閃忽。賊驚惑不敢逼。

→ 기병은 멀리까지 달리며 용감히 싸웠고, 이리저리 번갯불처럼 움직이니 적들은 놀라고 혼란에 빠져 감히 가까이 오지 못했다.


夜深月黑。毁舍作筏。潛渡江掩擊之。剿殺無筭。

→ 밤이 깊고 달도 어두운 가운데, 집을 허물어 뗏목을 만들어 몰래 강을 건너 적을 기습하여,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죽였다.


有頃安信甲,李潚各率兵來援。分左右翼進戰益急。

→ 이윽고 안신갑과 이수가 각각 군대를 이끌고 와서, 좌우에서 협공하니 전투는 더욱 치열해졌다.

信甲馳馬掠陣中賊砲死。

→ 안신갑은 말을 몰고 적진을 뚫다가 포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璜氣湧如山。直欲突進生呑賊。潚執手止之。

→ 안황은 분노가 산처럼 솟아올라 즉시 돌진해 적을 산 채로 삼키려 하였으나, 이수가 그의 손을 붙잡고 말렸다.

璜曰:賊氣旣衰。機不可失。鼓勇先登。

→ 안황이 말하기를 “적의 기세는 이미 꺾였으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북을 울리고 용기를 내어 앞장서서 올라갔다.

軍皆殊死戰。賊衆大奔。悉趨江左。

→ 군사들은 모두 결사적으로 싸웠고, 적군은 크게 패하여 강 너머로 도망쳤다.

轉掠達城。璜以輕騎躡其後。直至八公山僧舍。

→ (왜적은) 다시 달성(達城)을 약탈하고자 했으나, 안황은 경무장 기병으로 그 뒤를 쫓아, 곧장 팔공산 승방에 도착하였다.


與諸壯士焚香告天。嚴師律縱間諜。聲言將盡劉賊。以雪國恥。

→ 그곳에서 장사들과 함께 향을 피워 하늘에 고하고, 군율을 엄히 하며 첩자를 풀어, 왜적을 모두 없애 나라의 치욕을 씻겠다고 공언하였다.

賊聞風益駭。不戰而退。

→ 왜적은 그 소문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싸우지도 않고 도망쳤다.


戊戌平酋死。亂始平。遂歸鄕里。結廬墓下。未嘗以戰功自居。

→ 무술년(1598)에 왜적의 수괴가 죽고 난리가 진정되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의 무덤 아래에 초가집을 짓고 살았으며, 결코 자신의 전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朝廷但爵以奉事。識者惜其屈。

→ 조정에서는 그에게 '봉사'라는 낮은 벼슬만을 내렸고, 안황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였다.


後七年乙巳。參宣武原從勳錄。貤贈父母。

→ 그로부터 7년 뒤인 을사년(1605)에 선무공신 원종공신에 참여하게 되었고, 부모에게도 증직이 내려졌다.

及昭敬王禮陟。而光海政亂。璜益無意於世。

→ 선조가 승하하자 예로 장사를 지냈으나, 곧 광해군 정권이 어지러워지자 안황은 더욱 세상일에 뜻을 두지 않았다.


杜門讀古人書。間以游泳於山巓水涯。沒世而無悔。

→ 문을 닫고 옛사람들의 책을 읽으며, 때때로 산 꼭대기와 물가에서 수영하며 여생을 보냈으니, 평생토록 후회가 없었다.

天啓癸亥卒。江右士女聞之流涕。

→ 천계(명나라 연호) 계해년(1623)에 세상을 떠났고, 강 오른편(경남 지역)의 남녀들이 그 소식을 듣고 눈물 흘렸다.